Monday, July 22, 2013

요즘 한국인들의 고민과 대답이 여기에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스님이 자신의 철학으로 이 인생의 문제를 답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물을 사람도, 묻고 싶지도 않은 가 보다. 이 슬픈 현실이여,,

http://startasting.tistory.com/59

교회가 돈의 지배를 받다 (기독교학교는 어떤가? 똑같이 돈의 지배를 받는 현상이 나오지 않는가?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와 학교는 어디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교회가 돈의 지배를 받다

시사저널 | 정락인 기자·조혜지 인턴기자 | 입력 2013.07.23 10:06         
'교회를 크게 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어느 구절에도 없다. 예수는 평생 검소한 삶을 살았다. 물질적 힘과 권세, 종교적 카리스마를 주겠다는 유혹을 모두 물리쳤다. 예수가 거부한 것을 오늘의 일부 교회들은 앞다퉈 쫓아가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과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화근이 돼 교회가 경매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7월1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판교의 충성교회가 526억원에 경매로 나왔다. 종교시설로는 역대 최고가여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원래 충성교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서 개척교회로 출발해 규모를 키웠다. 2010년 판교 신도시가 조성되자 은행 돈을 빌려 교회를 신축했다. 지하 5층, 지상 7층 규모로 연면적 2만5980㎡(7859평)에 달하는 초대형 교회다. 예배당에서 3000명이 한꺼번에 예배를 볼 수 있을 정도다. 충성교회가 강남에서 판교로 옮긴 것은 신도시에 새로 유입되는 신도들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충성교회의 예측은 빗나갔다. 신도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고, 덩달아 들어오는 헌금도 적었다. 그렇다 보니 건축 부채의 원금은커녕 이자를 갚기에도 힘든 상황이 됐다. 교회측은 신도 확보를 위해 교회 부대시설 등을 지역민들의 문화센터로 개방하기도 했으나 생각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자금난에 허덕이다 교회가 경매되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다. 이 건물은 입찰자가 없어 한 차례 유찰됐고, 8월5일 20% 낮은 최저가 421여 억원으로 다시 입찰이 진행될 예정이다. 현행법상 종교시설은 다른 용도로 변경하기 힘들다. 종교 목적이 아닌 경우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매우 까다롭다.

그렇다 보니 고가 매물의 경우 입찰자가 나서기 쉽지 않다. 경매 전문 부동산업체인 태인경매 박종보 연구원은 "충성교회의 경우 너무 큰 매물이라 낙찰이 쉽지 않을 것이다. 4~5번 정도 유찰되고 절반 정도로 가격이 떨어지면 그때 낙찰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충성교회는 말을 아꼈다. 기자는 충성교회측에 교회가 경매된 사정을 자세히 듣고자 했으나 교회 관계자는 "따로 할 말이 없다"며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윤여풍 담임목사와의 전화 연결도 이뤄지지 않았다.





(왼쪽)종교시설 역대 최고가로 경매에 나온 판교 충성교회. (오른쪽)인천 송도의 한 상가건물에 입주한 교회. 매물로 나와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매물 쏟아지자 교회 매매 사이트도 등장

경매나 매매 시장에 나온 교회는 충성교회만이 아니었다. '교회 매매 전문 사이트'가 등장했을 정도로 많은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인 인천 송도의 성령교회는 지난해 10월 57억5000여 만원에 경매로 나와 팔렸다. 교회 관계자는 "채무 문제 때문에 교회를 내놓았고, 다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교회는 지난해 9월 58억원(융자 16억원 포함)에 매물로 나왔지만 아직까지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 경북 포항에 있는 한 교회도 올해 2월 13억원에 매물로 나왔지만 여전히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회측은 주변 환경에 대해 '5000세대 아파트 단지이며 근린공원 옆'이라고 했고, 특징으로는 '신항만 배후 단지이며 영일만 다리 건설 예정'이라고 적어놓았다. 신도들이 많아 헌금이 많이 들어온다는 뜻이고, 또 향후 개발이 되면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주변 환경도 좋고, 향후 유력한 개발 예정지인데 왜 교회를 팔려고 내놓은 것일까.

정 아무개 담임목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종교적 색깔이 맞지 않는 성도들이 빠져나가면서 자금난을 겪었다. 이자가 돌지 않아 스트레스로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정 목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긴다고 했다. 지난해 6월 내놓은 매물이 아직까지 팔리지 않는 것에 대해 "계속 운영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받들고 있다"고 했고,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팔겠느냐'고 묻자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양보해줄 생각이 있다"고 하는 등 잘돼도 하나님 뜻, 못돼도 하나님 뜻으로 돌렸다.

신축한 교회가 법원 경매로 넘겨지거나 매물 시장에 나온 곳도 있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교회는 12억2000만원, 경기 파주시 탄현면의 한 교회는 29억8000만원에 경매로 나왔다. 신축 교회를 팔려는 경기 일산 동구의 한 교회 관계자는 "교회를 짓자마자 3개월 만에 불이 났다. 지금은 수리한 상태에서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10억원대 이상의 교회 매물은 전국에 수두룩했다. 매물로 나온 교회들은 하나같이 은행 융자가 끼어 있는 것으로 보아 빚더미에 쌓인 교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인경매에 따르면 교회를 포함해 경매로 나온 종교시설은 2008년 181건에서 지난해에는 312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2011년까지만 해도 300건 이하였는데, 지난해부터 그 이상이 나오더니 올해는 6월 말 기준으로 벌써 150건이 넘었다.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20%가 증가한 수치다.

경매물은 교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종교시설의 경매가 부쩍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박종보 연구원은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 호황을 맞으면서 종교시설 증축 및 신축 바람이 불었다. 그러다 부동산 버블이 시작되면서 신자들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부동산 채무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교회 매매 사이트를 운영하는 김선우 권사는 "경험상으로 봤을 때 교회를 매각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신도들이 종교적인 색깔 등의 문제로 다른 교회로 갑자기 이동해서 자금난을 겪거나 교인들과 함께 교회를 형편에 맞게 옮기는 경우"라고 밝혔다.





2000년대 초부터 증축·신축 가속화

교회는 가족 공동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도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도 다니던 교회에 계속 나가는 특성을 보인다. 또 담임목사가 다른 곳으로 가면 그곳으로 교회를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교회가 다른 종교단체에 팔려도 신도가 그 교회에 계속 나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교회가 매각되자 일부 신도들은 한 신도가 가지고 있는 사업장에서 주말마다 모여 예배를 보는 경우도 있다. 결국 교회 매매는 신도들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주게 된다.

교회 운영 자금의 대부분은 신도들의 헌금에서 나온다. 헌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교회 재정이 어려울 때는 건축헌금 등 특별헌금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교회측은 매각을 하면서 신도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매각할 때가 돼서야 알려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경매나 매물로 내놓은 것을 숨기다가 거래가 성사된 후에 통보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신도들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은행, 신도 수·헌금 고려해 대출 규모 정해

교회가 경매되거나 매물로 나오는 것은 '경기 불황' 탓이 크다. 신도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지면 헌금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돈'이다. 교회는 신도 수만 일정하면 운영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여러 가지 명목의 헌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은행 빚이 많은 데는 무리한 확장에 원인이 있다. 신도를 늘려 헌금을 더 확보하기 위해 교회 규모를 키우려 하고, 은행 돈을 무리하게 끌어다 쓰다가 이를 갚지 못하면서 경매되거나 매매하는 것이다.

은행에서도 돈을 빌려줄 때 교회 규모나 신도 수 등을 고려한다. 한 시중 은행 지점의 간부는 "교회에서 대출 상담을 할 때 '우리 교회는 신도 수가 얼마이고, 헌금이 일주일에 얼마씩 들어온다'고 말한다. 우리도 신도 수와 헌금에 따라 대출 규모를 정한다. 은행 담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때 신도시에 큰 교회를 지으면 반드시 교인들이 찾아온다는 '신화'가 만들어지면서 신도시 대형 교회 신축 붐이 일기도 했다. 많은 교회가 양적 팽창을 추구하면서 대형 교회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도시에 대형 교회를 지으면 신도들이 몰려든다는 신화는 깨지고 있다. 사상 최고가 경매라는 '불명예'를 안은 충성교회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개신교에서 교회 규모와 신도 수를 교회의 위상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도 교회 대형화를 부추기는 원인이다.

개신교 신자이면서 < 예수 없는 예수 교회 > 를 펴낸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는 "예수님은 낮은 곳으로 직접 찾아다니면서, 씨알들과 동고동락했다. 한국 교회는 커질수록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오히려 거대화되면서 특권이 있는 곳으로 높이 올라가려고 한다. 그래서 '예수 없는 교회'"라고 비판하며 "교회는 돈이, 권력이 지배하는 공동체가 아니고 사랑이 지배하는 공동체다. 사랑보다 더 진보적인 힘은 없다. 스스로 낮추어서 남에게 좋은 것을 서로 주려고 하면 거기에 참 평화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Sunday, June 9, 2013

<외국인 150만명시대 다문화 2세의 현재와 미래>

'다문화가정 2세'에 포함되지 않는 제도권 밖 2세들 많아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지난해 5월 '다문화 가정 출신 방화범'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 모(18) 군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친권자인 할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정 군은 다문화대안학교인 지구촌학교 설립자 김해성 이사장에게 입양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곽경택 영화감독이 방화사건을 소재로 정 군이 출연하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실제로 김 이사장은 정 군이 두달 동안 병원에 격리돼 정신과 치료를 받고 넉달 동안의 교정프로그램을 이수하는 동안 정 군과 연락을 취하면서 그가 다시 인생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애썼다. 그러나 올봄 자유의 몸이 된 정 군은 얼마 전 집을 나가 연락이 끊겼다.

김 이사장은 "이미 아이가 아닌데다 세파에 많이 시달린 상태라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서 "정 군 사건은 한국의 다문화가정 2세 아이들이 가정과 사회로부터 방치될 경우 한국사회가 어떤 미래를 맞게 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정 군 사건을 시작으로 한동안 다문화가정 2세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정부는 이들만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이들의 사회적 이탈을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내놨다.

올해에도 '제2차 다문화가족정책 2013년도 시행계획'에 따라 다문화가정 자녀가 많이 다니는 학교에 한국어교육과정(KSL)이 운영되고 있고 다문화가족 자녀를 위한 이중언어강사도 늘리고 있다.

또 다문화가족 자녀가 취학 전에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는 예비학교도 지난해 26개교에서 올해 50개교로 늘어나고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해 지출되고 있는 기업들의 사회공헌사업비도 계속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인과 외국인으로 이뤄지는 일반적인 '다문화가정 2세'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혼을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다문화가정을 꾸린 외국인은 4월말 현재 14만9천386명이고 결혼한 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들을 합치면 22만여명에 이른다.

이들 외에 결혼 이외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결혼한 경우까지 합하면 결혼이민자는 26만7천명에 달한다. 또 외국인들 끼리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기도 한다.

이처럼 다문화가정 2세 통계에 누락된 이들은 정부의 다문화정책이나 각종 지원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으로 재혼이주한 부모를 따라 뒤늦게 들어오는 중도입국자녀도 해마다 늘고 있다.



피부색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
피부색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지난 5월13일 열린 '제32회 세종문화상 시상식'에서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이 축하공연을 펼쳤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도입국자녀는 지난해 4월 현재 4천288명으로 전년보다 2천명 가량 증가했으며 이들 중 정규학교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2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한국어를 전혀 못해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이현정(52) 단장(전 서울온드림다문화가족교육센터장)은 제도권 밖으로 이탈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지난해 4월 현재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가정 자녀 수는 4만6천954명으로 1년 전에 비해 21.4%, 2006년보다는 5배 늘어났지만 자퇴 등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교 이탈하는 비율이 일반 학생들에 비해 여전히 높다.

이 단장은 "학교 범위를 벗어난 아이들은 정부나 기업이 제공하는 다문화정책 및 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돼 사실상 방치되는 셈"이라며 "특수학교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과는 별도로 제도권 밖의 이주민 자녀를 위한 별도의 시설이나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 2세 교육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내국인 아이들의 다문화인식 전환 문제이다.

전문가들은 '리틀 싸이'로 잘 알려진 황 모 군이 베트남 엄마를 둔 다문화가정의 자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악성 댓글에 시달렸던 일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에 반(反)다문화 정서를 불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프리카 가나 엄마에게서 낳은 아이 셋을 돌보고 있는 지구촌학교 김 이사장은 "한국에서 태어난 순수 한국 아이들인데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아이들 중 하나는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지구촌 어린이마을'을 설립해 불법체류자 자녀를 포함한 다국적 아이들 50여 명을 수용했다"면서 "앞으로 3년 내 군에 입대할 다문화가정 2세가 4천 명에 이르는 등 앞으로 이들의 사회진출이 계속 늘어나는 만큼 어릴 적부터 피부색이 달라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2년 한국인과 결혼해 다문화가정을 이룬 독일 출신의 이 참 한국관광공사 사장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동사무소나 마을회관 등에 '다국어 놀이방'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시설을 만들면 한국 어린이와 이민자 2세가 함께 어울리면 말도 배우고 피부색에 의한 차별의식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올해부터 초·중학교 교과서에 다문화 관련 내용을 수록해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지만, 더 어릴 때부터 다양성을 몸으로 체득하게 만들어야 정 군이나 황 군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체류 외국인 150만 명 시대에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체류 외국인 150만명 첫 돌파..다문화·다인종화 가속

100명 중 3명꼴 외국인…중국(47%)·미국·베트남順 "다문화 부작용 최소화할 균형잡힌 정책 마련해야"연합뉴스 | 입력 2013.06.10 09:51 | 수정 2013.06.10 10:05



100명 중 3명꼴 외국인…중국(47%)·미국·베트남

"다문화 부작용 최소화할 균형잡힌 정책 마련해야"

(서울=연합뉴스) 현영복 기자 =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귀화자 등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150만 명을 처음 돌파했다. 국민 100명 가운데 3명꼴로 외국인인 셈이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미군, 관광객, 산업연수생 등 외국인은 38만여 명 수준에 불과해 우리 사회의 이방인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현재는 국제화 시대를 맞아 외국인이 국내 총인구의 3%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급증, 한국 사회는 외국인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진입했다.

체류 외국인 규모 확대로 외국인 혐오주의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다문화를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 녹아들게 할 통합적이고 균형잡힌 외국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10일 법무부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체류 외국인은 9일 현재 150만 1천761명을 기록, 150만 명을 처음 넘어섰다.

지난 2003년 체류 외국인이 67만 8천687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2배 넘게 급증했다.

국제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체류 외국인 수가 꾸준히 늘었고, 재외동포를 위한 방문취업제가 도입된 2007년에 체류 외국인 수가 106만 6천여 명을 기록하며 외국인 1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체류 외국인을 국적별(4월말 148만 6천367명일 당시 기준)로 보면 한국계를 포함한 중국(49.9%) 출신이 절반가량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이어 미국(9.3%), 베트남(8.1%), 일본·필리핀·타이(각각 약 3%), 우즈베키스탄(2.5%), 인도네시아(2.3%), 몽골(1.8%) 등이다.

이들 가운데 불법체류자는 17만 9천516명이다. 불법체류자는 2004∼2008년 20만 명을 웃돌았으나 2009년 이후에 17만 명 안팎 수준에 머물고 있다.

체류자의 연령별로는 20∼29세가 28%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30∼39세 25%, 40∼49세 19%, 50∼59세 15%, 60세 이상 9%, 9세 이하 4% 등이었다.

한국 국적 미취득 외국인 배우자(결혼이민자)는 14만 9천386명을 기록했다. 외국인 배우자 수는 지난 2009년 12만 5천87명 수준이었으나 2010년 14만 1천654명, 2011년 14만 4천681명, 2012년 14만 8천498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외국인 배우자 가운데 여성이 85.7%를 기록하며 대부분을 차지했다.

결혼이민자, 혼인 귀화자, 기타사유 국적 취득자 등 다문화가족은 작년 말 현재 26만 7천727명에 달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크게 늘면서 각종 외국인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다문화, 사회통합 등과 관련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내외국인 간, 인종 간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곽재석 이주동포정책연구소장은 "단일민족을 전통으로 삼아 온 한국 사회가 외국인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다문화 환경으로 진입했다"면서 "다문화에 대한 반감을 완화하고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결혼이민자, 조선족 동포, 이주노동자 등을 아우를 수 있는 균형잡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youngbok@yna.co.kr

Tuesday, May 7, 2013

재미있는 자기 존중감의 단어가 또 언급되고, 한국사회에 퍼져 있는 문제의 중심에 해결책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자기 존중감이다. 하지만 성경은 자기 존중에 대해서 얼마나 말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오히려 성경은 자기 존중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에 초점을 맞추어 살라고 한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존중이 지나쳐 자기 중심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자신의 욕망과 안위를 위해서 부정과 불의에 익숙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게 사는 인간이 자기 존중감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가정의 달에

2013-5-8

가정의 달, 5월을 맞으며 가정에 관한 책 한 권을 소개한다. "아름다운 가족"이란 제목으로 영어제목은 "The New Peoplemaking"이다. 가족학의 대가인 버지니아 사티어 교수가 쓴 책을 나경범씨가 번역하였고 도서출판 창조문화에서 출간하였다. "가정은 새사람을 만드는 공장이다"는 부제가 붙어있다.
과거에는 가정학을 많이 공부하였으나 시대흐름이 바뀌면서 가족학이 뜨는 학문이 되었다. 가정학이 음식, 주택, 의복 등의 가정문제를 주제로 다루는 학문임에 비하여 가족학은 가족들 사이의 인관관계를 중심으로 다룬다. 부부관계, 고부관계, 부모와 자식관계 등이 가족학이 다루는 중심과제이다.
"아름다운 가족"서두에 쓰기를 자동차는 자동차 공장에서 만들고 텔레비전은 텔레비전 공장에서 만든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디에서 만드는가? 가정에서 만든다. 가정이 사람을 만드는 공장이다. 자동차 공장에서 불량 자동차를 만들면 불량 자동차가 길거리를 달리고 텔레비전 공장에서 불량 텔레비전을 만들면 불량 텔레비전이 가정으로 배달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만드는 공장인 가정에서 불량 사람을 만들게 되면 그들이 불량 부모가 되고 불량 청소년이 된다.
물론 학교가 중요하지만 가정에서 불량 사람이 만들어지면 학교에서 감당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책의 서두에 쓰기를 모든 가정문제를 분석하여 보니 결론으로 4가지 문제로 요약된다고 하였다. 복잡한 가정 문제들이 결국은 이들 4가지 문제로 귀결된다는 지적이다. 그러기에 다음의 4가지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면 가정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문제를 극복하여 나갈 수 있게 된다.
첫째는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기 존중감이다.
둘째는 가족들 서로간의 의사소통이다.
셋째는 가족들 각자가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지를 규정하여 주는 규칙이다.
넷째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과 가족 밖 사회와의 관계이다.

Thursday, May 2, 2013

자녀행복이라는 단어를 찾아서 자신의 삶을 바꾸는 데, 자녀의 신앙을 위해서 삶을 바꾸는 크리스챤 부모들은 있는 가?

"우리 애들 대학 안 가도 상관없어요… 행복하면 되죠" 30·40代 8쌍, 小마을 만들어 시골 이주

충남 아산 송악면 '소나무 마을'조선일보 | 김연주 기자 | 입력 2013.05.03 03:14 | 수정 2013.05.03 09:55    


 
 
 
'우리 강빈이 델꼬(데리고) 계신 분~~.'(강빈이네)

'저희 집에 있어요.'(시예네)

'이런, 얼른 집으로 보내주~^^.'(강빈이네)

'강빈이가 밥 먹고 가고 싶대요. 찬은 없지만 그냥 여기서 먹일게요.'(시예네)

'아이고 ㅠㅠ 고마워.'(강빈이네)

충남 아산 시내에서 차로 30분쯤 떨어진 송악면 송학리 '소나무 마을'. 어스름 무렵이면 엄마 8명의 휴대전화 카카오톡에 '우리 애 어딨느냐'는 전체 메시지가 뜬다.

↑ [조선일보]충남 아산시 송악면 송학리‘소나무 마을’사람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얼굴이 까맣다. 어른들은 열심히 텃밭 일구고 꽃 가꾸고, 아이들은 양말이랑 바지 무릎에 수시로 구멍이 날 때까지 밖에서 뛰어논다. /신현종 기자
이 마을 아이들은 남의 집을 제 집 드나들듯 하며 놀고, 끼니 때면 아무 집이나 가서 "밥 주세요" 한다. 소나무 마을은 '좋은 교육'을 찾아 헤매던 30·40대 젊은 부부 8쌍이 마음에 드는 시골 초등학교 옆에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직접 일군 곳이다. 어른 19명, 배 속 태아부터 초등학교 5학년생까지 아이 17명이 함께 산다.

인터넷에서 만나다

소나무 마을 사람들은 2010년 인터넷에서 처음 만났다. 경찰, 삼성디스플레이 연구원, 홍보 대행사 이사, 건설 회사 직원 등 직업은 제각각이다. 유일한 공통점은 '아이들이 유년 시절엔 학원·성적 걱정 안 하고 행복하게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전원에서 아이 키우며 살고 싶은 마음에 부산, 남해, 제주도까지 알아보고 다녔어요. 혼자 집 짓고 살기는 좀 두렵고, 마을 만들어 살면 참 좋겠다 싶던 참이었어요."(박병구씨·47)

각자 이런 꿈을 이룰 방법을 찾다가 인터넷에서 만났다. 이들은 충남 아산시 송악면에 있는 거산 초등학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거산초는 '작은 시골학교'의 성공 모델로 꼽히는 곳이다. 농촌 학교라 2001년엔 학생 수가 30명까지 줄어 폐교 위기까지 몰렸는데 교사와 학부모들이 합심해 '생태 교육' '체험 학습'으로 교육과정을 바꾸면서 천안·아산에서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100여명까지 늘어 2005년에는 분교에서 본교로 승격됐다. 지금도 2015년까지 신입생 70~80명이 대기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안일배(37·삼성디스플레이 근무)·이정인(37)씨 부부는 주변에서 "미쳤다"는 말을 들으며 거산초를 택했다. "주변 사람들처럼 명문대에 목매면서 월 80만원 들여 아이를 영어 유치원 보내며 살기는 싫었어요."(이정인씨)

인터넷에서 서로 마음을 확인한 부부들은 실제로 만나서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겼다. 2010년 9월 거산초 근처에 땅 1600평(5290㎡)을 함께 사서 제비뽑기로 집 위치를 정하고 집을 지었다. 마을 근처에 소나무숲이 있어 '소나무 마을'로 이름 붙였다. 경찰관 신은재(38)씨, 홍보 대행사 이사인 정택순(40)씨, 그리고 금융투자회사를 다니는 박병구씨는 직장이 서울이라 아산에서 서울까지 매일 KTX 등으로 출퇴근한다.

소나무 마을은 날마다 캠핑

입주 3년차, 소나무 마을 사람들은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아 대만족"이라고 말한다. 우선 아이들이 즐겁다. 1학년 쌍둥이를 거산초에 보내는 정택순씨는 "말을 안 들을 때 '너 그럼 학교 안 보낸다'고 하면 말을 들을 정도로 애들이 학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봄이면 쑥떡 만들고 화전(花煎) 부쳐 먹는 '생태 체험 교육'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든 것이다.

어른들은 더 신났다. 소나무 마을은 하루걸러 '캠핑장'이다. 지난주에도 전체 카톡이 떴다. '오늘 저녁 6시 모임 은수네 집입니다. 맥주 2병씩, 집에 있는 과일 조금씩 가져와 나눠 먹을까요?^^.'

마을 사람들에게 "애들이 좋은 대학 못 가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안일배씨가 답했다. "대학 안 가고 농부 해도 괜찮아요. 행복하면 되죠." 박병구씨는 "지금 우리 애들같이 크는 게 소수이고, 어릴 때부터 학원을 도는 애가 다수다. 우리 애들이 귀하게 대접받고 필요해질 날이 올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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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February 12, 2013

Supporting Theological Reflection and Conversation that Strengthen the Ministry of the Church

BOOK REVIEW:
Educating for Life: Reflections on Christian Teaching and Learning. By Nicholas P. Wolterstorff, edited by Gloria Goris Stronks and Clarence W. Joldersma.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2. 304 pp. $21.99 (paperback). ISBN 080102479X.  In this well-written and accessible collection of essays and speeches, Nicholas Wolterstorff, addresses a number of topics related to Christian day schooling.  He outlines the purpose of the Christian day school and relates that purpose to curriculum concerns.  He answers a diverse number of critics of the Christian day school endeavor who believe that it is, variously, conformist, isolationist, or irrelevant in modern society.   He advocates altering the current system of school funding to make public funds available for private, religious schools.  Finally, he discusses the Christian life of gratitude, peace-making, and justice-seeking that the Christian day school should inculcate.
These diverse essays do not advance a single line of argument and are hard to summarize.  Yet, throughout, Wolterstorff draws upon the rich tradition of American Dutch Calvinism to construct a theological vision of education and its place in society.
From Wolterstroff’s perspective, education is an inescapable feature of human existence.  In contrast to bugs and rocks, humans are created to learn.  Being finite, they must choose what they learn.  We cannot learn it all.  When teachers make decisions regarding the curriculum, they not only select what their students will learn, but they decide the sorts of people their students will become.
Building on this foundation, Wolterstorff corrects a previous generation of Christian day school proponents who thought that the aim of Christian education was imparting a Christian worldview.  Such a goal, he contends, is far too modest.  He argues that a better goal is educating for the life of faithful discipleship in today’s world.  Faithful disciples, he says, live their whole life before God and seek Christ’s Lordship in every sphere of life. 
Wolterstorff concludes that education in the service of this purpose must address the whole person.  It must recognize that we are embodied creatures with intellect and affections.  It must be relevant to who students are today and who they will become tomorrow.  It must attend to the powerful unspoken messages that are imparted through the school’s ethos so that they are consistent with the life for which the school educates.  It must approach every field of knowledge in a way that teaches students that all life is lived before God.  Such an education must not isolate students in a Christian ghetto, but must expose them to non-Christian and anti-Christian voices of the broader culture.  Thus equipped, students can exercise the cultural mandate of Genesis 1 and develop a culture that is oriented to God and that sustains flourishing.
Wolterstorff draws on the Kuyperian understanding of spheres to articulate his view of the school’s authority.  Like many in this tradition he believes that since God has given children to parents, the basic right and responsibility for a child’s education inheres in the parents.  The realities of life, however, are such that parents cannot fulfill this obligation by themselves and must entrust their children to schools.  Teachers and schools derive their authority to teach from parents and maintain that authority based on their educational competence.  Although parents bestow educational authority on the school they choose, they retain the responsibility of seeing to it that their children are educated according to their religious beliefs and, if they are not, to seek an education elsewhere.
Wolterstorff  thinks that public education in common schools is a mistake.  He complains that education in common schools violates the conscience of those who, like him, think that all life is lived before God.  Furthermore, he observes that public schools cannot present a morally thick or compelling account of citizenship because they cannot refer to transcendent values.  To remedy to this situation Wolterstorff advocates a system of school choice.  Such a system would empower all parents, whatever their religious beliefs, to educate their children according to the dictates of their conscience. 
Reformed Christians have long been divided on the wisdom of common schooling.  When common schooling started, voices within the reformed tradition objected.  For example, the Southern Presbyterian theologian, Charles Dabney, denied that secular education was possible, claimed that public education encroached on the sphere of the family, and predicted that the dynamic of common schooling in a pluralistic society would make schools and society godless.  Dutch Calvinists in the mid-west viewed things similarly and formed their own schools.
In most other reformed communions, however, this position became the minority voice.  Education historian, Lawrence Cremin, reminds us that the advocates and leaders of the early common school movement in most states were largely drawn from the ranks of the Congregational and Presbyterian clergy.  Inspired by John Calvin and the Puritans, these leaders viewed public education as a common good.  They continued supporting public education as shed its religious content during the 19th Century and when it dropped prayer and bible reading in the 20th Century.  They stood by public education during integration and the gloomy days of massive resistance.  Through the years they maintained that public education was indispensable to a happy and holy society and trusted that a secular education would not hinder them in the task of forming disciples.
In recent years the minority position has received a new hearing.  In the 1980’s a nascent school choice movement began championing public funding for private and religious schools.  This movement has grown considerably and is challenging common schooling across America.  Voices in this movement range from libertarians, such as Myron Lieberman, to religious conservatives, such as Pat Robertson.  From this reviewer’s perspective, none is as articulate as Nicholas Wolterstorff.
There are many things to affirm in Wolterstorff’s thinking.  Surely he is correct to maintain that faithful disciples live all life before God and seek Christ’s Lordship in every sphere of life.  Surely he is correct to call our attention to the theological dimensions of all fields of knowledge.  The God we worship is, after all, the God of all things.  Finally, he is surely right to say that the purpose of the church’s educational program goes beyond inculcating a Christian worldview, but must aim to educate for the faithful life.
Having said this, this reviewer disagrees with Wolterstorff’s reading of the spheres as it pertains to education.  Wolterstorff, as we have seen, believes that God gives parents the primary right and responsibility to determine their child’s education.  In an ideal world, parents bequeath this responsibility to the school they choose, while retaining the right to choose another school or no school. 
God surely does entrust children to parents, but doesn’t God also entrust children to the world?  In no society, not even one, are parents the sole educators of their children.  Although parents do have a significant responsibility to oversee their children’s education, an obligation also rests on the larger whole community to ensure that every child is well educated.  Public schools fail when they do not provide some equality of opportunity and prepare everyone to participate in civil society.  A fuller understanding of education in relationship to the spheres will lead us to resist lodging educational responsibility entirely in any one sphere, whether it be the family or the public school.  It will also help us appreciate that God has given each sphere (the family, church, state, the media, etc.) a distinctive role to play in the stewardship of the education and nurture of children.
Wolterstorff is concerned that public schools teach children that God is irrelevant or limited to a sphere of life called “religion.”  Either result would, admittedly, distort the formation of a faithful disciple.  Yet, this need not be the case.  This is illustrated by a second criticism he levels at the public schools:  he says that public schools are unable to answer when their teaching about morals leads students to ask “why?” or “who says so?”  Isn’t it the case, though, that anytime the school has moved a student to “why?” the school has succeeded in conveying the profound importance of religion?  Wolterstorff complains that if schools can’t answer “why?” its moral education must be incoherent.  True, but a bit of incoherence at this point would only be a bad thing in a society without a church.  When a student asks, “Why?” the public school should tell students that the question is very important and worth pursuing, but they have no authority to answer (because the question is so important), and refer them to those with that authority: their family and religious institution.  This, of course, means that those of us in the church and the family need to be ready and equipped to answer.
Raymond R. Roberts
Pastor, Grace Presbyterian Church
Jenkintown, PA 

PUBLISHED IN THE BULLETIN OF THE INSTITUTE FOR REFORMED THEOLOGY, WINTER 2004, VOL.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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