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September 26, 2012

올해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최대의 화두는 힐링(Healing)이다

 
9/26/12
ㆍ찌든 현대사회 최대의 화두… "과대포장 힐링상품 범람" 우려 목소리도

올해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최대의 화두는 힐링(Healing)이다. 치유를 뜻하는 이 한마디는 방송 프로그램뿐 아니라 대선후보의 정치행보에까지 그 이름표를 붙였다. 올 한 해 동안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힐링을 내세웠고, 심지어 먹거리까지 힐링을 광고하며 팔리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갑자기 힐링에 쏠린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위기에 대한 위기감과 고용불안에 대한 걱정, 사회적 소통 부재는 자살률 증대와 함께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묻지마 범죄의 위협은 방치된 지뢰처럼 세상을 공격하고 있다. 전통적 가족관계는 파괴돼 고시원을 전전하는 1인가구가 급증했다. 일찌감치 직장에서 밀려난 명예퇴직자들은 생존을 위해 이 일 저 일을 찾아나서지만 내일은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병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것이 우리에게 닥친 현실의 모습이다.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병원을 찾아 전문적인 진료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진료에 대한 편견은 병원을 기피하고 마음의 병을 키우기 십상이다. 그런 참에 힐링 코드가 등장했다. 소소한 것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다는 속삭임은 누구나 귀가 솔깃해지는 마법이다.

현재 힐링을 가장 많이 내세우고 그 혜택 또한 가장 많이 보고 있는 분야는 문화계, 그 중에서도 출판계다.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힐링 또는 치유라는 주제어를 검색하면 약 1000여종의 책이 나타난다. 아동도서부터 건강 관련 서적까지 분야 또한 광범위하다. 온라인 서점 인터파크 관계자는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의 주제가 힐링이라고 못박았다. 거기에 잘 팔리는 힐링 관계 책의 저자들이 주로 스님인 점에 주목하여 스님 더하기 힐링이 서점가를 사로잡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출판계 강타 초베스트셀러 기록

올해 100만부 이상의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서점가를 점령한 혜민스님의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은 이 같은 추세를 이끈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그 전에도 법정스님법륜스님 등의 책들이 출판가의 이슈를 만들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을 편하게 하는 내용이라 주목받는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사회 속에서 위로받고 싶은 바람이 이 책의 폭발적인 판매로 이어졌다고 본다." 혜민스님의 책을 기획한 쌤앤파커스 황은희 편집팀장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힐링 코드는 국내보다 미국 출판계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잡은 추세라고 한다. 다만 우리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세분화해 있어 에세이류보다 실질적인 지침서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미국 최대의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힐링으로 검색 가능한 책은 약 4만종 이상, 대략 20여년 전부터 꾸준히 출판되고 있다. 그야말로 힐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대적인 추세로 자리잡았다.

출판계 일각에서는 최근의 힐링 유행을 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그 첫째는 다양한 책들이 나와야 함에도 지나치게 한 가지 주제에 편중된다는 지적이다. 과거 출판계는 국내에서만 200만부 이상 팔린 < 시크릿 > 의 성공으로 한 해 동안 출간된 인문계열 서적의 3분의 1 이상이 자기계발 서적류로 도배된 적이 있고,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된다. 혜민스님의 책이 성공한 이후 지금 그런 조짐이 엿보이며 다양성의 파괴라는 측면에서 출판계에나 독자 모두에게 해가 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대중의 바람과 선택이 있는 한 당분간 힐링 주제의 책들이 꾸준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둘째는 힐링을 표방하고 있지만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힐링 관련 책들은 자기계발서의 연장으로 주관적인 경험과 주장에 불과하며, 어떤 객관적인 내용과 입증할 만한 이론이 없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종교인들의 책은 지나치게 감성에 의존하고 있어 그 후유증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간 내면의 문제를 과도하게 신비화하고 비과학적 처방에 의존하게 한다는 위험도 경계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힐링이란 상업적 목적에 의해 탄생한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힐링을 포함한 미국의 긍정 마케팅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작가 바버라 에렌라이크는 그녀의 책 < 긍정의 배신 > 에서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이 같은 시선은 자칫 사회적 강요로 작용할 수 있으며,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은 외면하고 비과학적이고 신비적인 힘에 의존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과 합의보다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여 결국 갈등을 더 깊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그 배후에는 베스트셀러를 노리거나 기업 교육시장 등을 기대하는 상업적인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신비화·비과학적 처방 경계해야

국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힐링 상품으로 내놓는 대부분의 것들은 과대포장에 불과하거나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 명상학과 정준형 교수는 힐링 상품의 범람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힐링 상품의 대부분은 자연과학으로 증명하기가 어려운 것들이다.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하나 그 효능은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면에 그치고 만다. 힐링 요법의 궁극에는 명상이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직면하는 힘을 키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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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금산사에서 열린 템플스테이 행사 | 경향신문
최근의 힐링이 주목하는 부분은 관계효과, 즉 인간은 서로간의 유대를 통해 위로받고 심신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나마 집단적인 교류를 원한다는 것이다. 무명에 불과하던 혜민스님이 유명인사가 된 것도 트위터를 통해서이며, 혜민스님을 흉내낸 가공의 인물 효봉스님이 그 이상의 인기를 얻은 것도 익명의 세상에서나마 서로의 유대를 원하는 바람이라 볼 수 있다. 어찌됐든 힐링에 대한 높은 관심은 병든 사회가 내는 비명으로 들린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치유를 원한다면 문제의 회피와 일시적 충족감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하라고 권한다. 치유가 필요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진단하고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울증 등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는 과감히 병원을 찾아가고, 가식적인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건강한 사회활동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힐링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할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김천 <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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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September 20, 2012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향해 그토록 억척같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통장잔고 3000원…생활고 60대 부부 동반 자살<br>박준철 기자 terryus@kyunghyang.com<br><br>“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향해 그토록 억척같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월 15만원의 노령연금으로 살아온 60대 부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이 남긴 유서에는 삶에 대한 회한과 외로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참기 힘든 생활고와 사회·가족과의 단절에 따른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BR><BR>지난 25일 오후 10시51분쯤 인천 숭의동 한 주택에서 여모씨(69)와 아내 김모씨(68)가 숨져 있는 것을 옆 셋방에 살고 있는 김모씨가 발견했다. 여씨는 부엌에서 목을 매 숨졌으며, 아내는 거실에 누인 상태였다. 경찰은 아내가 먼저 목을 맸고, 여씨가 아내의 죽음을 확인하고 뒤따라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했다. 방에는 A4 2장짜리 유서가 있었다.<BR><BR>여씨 부부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수입은 1인당 7만5000원씩 월 15만원의 노령연금이 전부였다. 기초생활보장법에서 정한 1인당 최저생계비 55만3000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전기료나 수도료 등을 내지 않는다고 해도 고작 하루 5000원으로 두 사람이 먹고산 것이다. 인천 남구청 관계자는 “여씨 부부는 소득과 직업이 없었고, 매달 노령연금만 타 갔다”고 말했다. 여씨 부부는 경기 안산에서 살다가 2007년 4월 인천으로 이사했다. 처음엔 보증금 800만원짜리 전세를 얻어 살았다. 2009년 노령연금을 수급했지만 생활이 쪼들리자 전세를 보증금 500만원, 월세 30만원으로 바꿨다. 그러다 보증금도 까먹어 300만원으로 줄었다.<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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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article_photo><IMG hspace=1 vspace=1 src="http://img.khan.co.kr/news/2012/06/26/khan_IEmUkj.gif"></DIV></DIV>경찰 조사 결과 여씨의 통장에는 3000원밖에 없었다. 여씨는 신권 5만원짜리 10장인 50만원을 남겼다. 경찰은 “장례비로 쓰라고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BR><BR>여씨 부부는 노령연금 외에는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채 지냈다. 경찰관계자는 “노부부의 삶을 증언해줄 가족도, 친척도, 이웃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여씨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그동안 연락 없이 지냈다. 경찰은 “아들에게 연락했으나 ‘지금 찾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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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article_photo><IMG hspace=1 vspace=1 src="http://img.khan.co.kr/news/2012/06/26/l_2012062701003465100262601.jpg" width=350></DIV>
<DIV style="PADDING-TOP: 10px"></DIV></DIV>인천에 연고가 없던 부부는 외부 출입을 하지 않았고, 이웃들과도 전혀 교류가 없었다. 이웃 주민들은 하나같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집주인도 경찰에서 “전세를 놨을 뿐 여씨 부부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진술했다. 방에는 생활용품이 전혀 없었다. 냉장고는 텅 비었고, 신발과 약, 이불도 쓰레기봉투에 담겨 문밖에 놔둔 상태였다.<BR><BR>여씨 부부는 유서에서 “몇 년 전부터 동반자살을 준비해왔다”며 “인하대학교에 의료발전을 위해 (시신을) 기증했다”고 밝혔다. 노부부는 유서와 신분증·휴대폰·통장을 방에 두고, 창문을 활짝 연 채 목숨을 끊었다. 시신기증을 위해 빨리 발견되기를 바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마지막 소원도 이뤄지지 못했다. 사망한 지 24시간이 지나 시신이 발견돼 기증에 부적합한 상태가 돼 버린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외롭고 힘든 노부부들과 관계를 맺고 돌봐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하루빨리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BR><BR>ⓒ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uesday, September 18, 2012

2012년 9월 14일 한국말을 너무 잘 하시는 미국분

지난 금요일
아무도 근접하기 힘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도와주는 분들을 만났다.
이 기도모임은 굉장히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 중 한 이야기는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심지어 그 문이 열리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며 음성을 들려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그 문이 열리기를 위해 기도하고, 하지만 문이 안 열린 것 같을 지라도 그렇게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도 일하고 계심을 감사한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왔다가 돈을 벌고, 다시 돌아가는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와주며 마음 문이 열릴 때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갖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도록 사역을 하는데, 다른 사역자로 부터 들은 이야기를 말씀하셨다.

육십이 넘은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많이 들었던 찬송가, 말씀들을 기억해 내며 고백한다. 네가 어렸을 적에 이것을 많이 들었다고, 내 아버지가 목사였다고. 그 동안 그들은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았다. 그런데 이 복음을 전해 들으면서 할머니는 이제 죽는 한이 있어도 복음을 전하겠다고 고향으로 들어갔다.

아들, 며느리, 그리고 동생에게 복음을 전한 이야기를 매달 3째주 되는 날 압록강 가에 나와 사역자와 이분이 사역의 결과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아들이 중국으로 나와 훈련받고 목사가 되길 바란다고 하여, 아들이 강을 건너게 한다.

어느 순간 부터 할머니와 연락이 되지 않자, 사역자는 3달째 될 때 부터 들통이 나 잡혔거나, 죽었거나 하는 추측을 하게 되고 나중엔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6개월 후 다시 그 분이 나타나 연락을 주고 받게 된다.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하러 출타했었다고 하며...

지금 황해도는…수탈·불평등이 만든 기근에 죽음·범죄가 판치는 정글로 변해

북한 인권, 진보와 보수를 넘어]1부 (1) 지금 황해도는…수탈·불평등이 만든 기근에 죽음·범죄가 판치는 정글로 변해 경향신문 |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송윤경·심혜리 기자 | 입력 2012.09.19 03:04 | 수정 2012.09.19 10:01
그들은 현상으로서의 인간으로 존재했다.

길고 잔인한 기근을 견디는 동안 불가피하게 양산된 죽음들과 폭력, 범죄에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생존과 돈에만 눈을 번뜩였고, 내일이나 희망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타인을 믿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본능이 눈빛에 서려 있었다. 종교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했다. 그러나 자녀 이야기를 할 때는 종종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중국 접경지역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 그들은 인간성(humanity)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직전에 놓인, '분기점'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인권은 사치였다.

북한 일부지역이 "2000년 이후 최악의 기근과 아사"를 맞고 있다는 것이 경향신문 취재팀이 중국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의 공통적인 증언이었다.

▲ 북한 최대 곡창지대임에도 곳곳에서 아사자 속출
최근의 대기근 사태는 자연재해가 원인이 아니라
권력계층의 수탈로 인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현상


북한 최대의 곡창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량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황해도의 상황은 실제 더욱 심각했다. 지난해 홍수와 올해 초 가뭄으로 흉작이 들었다. 황해도 출신의 한 농촌 간부는 자신의 마을 60가구 중에서 올해 굶어죽은 사람이 10%가 될 것이라고 계산했다. 춘궁기에 나는 작물들의 작황도 좋지 않아 특히 4~5월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많이 죽었을 때, 하루에 다섯 가구, 여섯 가구씩 죽는 것을 그냥 지켜본 적도 있다"고 그가 말했다.

황해남도의 한 노동당 중견 간부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근 상황을 전달했다. "보통 황해남도의 사망률은 1000명당 한 명꼴입니다. 그런데 지난 4월 현재 그 30배가 넘어섰습니다. 황해남도 인구가 200만명 정도니까 6만명 정도가 죽은 것으로 봅니다." 이 지역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했던 한 인부는 "올해 아사자가 급속히 늘어 시체를 제대로 처리할 수가 없어 시체 10구가 모이면 그때 모아서 매장을 한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시내 인근 얕은 산에 봉분 없이 묘를 만들었다. 제공되는 술 반 병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아사는 매우 긴 시간 동안 고통을 수반하는 죽음이다. 수십일간의 식량 부족을 견디는 사람들 중엔 아사를 피하기 위해 자살을 택하는 사람도 있었다. 외화벌이를 위해 지난달 중국으로 건너온 황해도 농촌 간부는 같은 이(里)에 사는 이웃 일가족의 자살 이야기를 전해줬다. 작년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을 드러냈던 지난 4월 어느 날, 이웃집 철이 엄마(가명)가 그에게 옥수수 3㎏을 꾼 뒤 쥐약을 풀어서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나눠 먹고 죽은 것이다. 양식을 빌려준 것이 오히려 죄가 되어서 간부는 그 뒤 한동안 안전부에 불려다녔다.

1990년대 후반 수백만명이 굶어죽었다는 '고난의 행군' 때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던 황해도 곡창지대에서 올해 아사자가 늘고 있다. 이 사태는 자연재해로 인한 일시적 식량난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북한주민 20여명을 인터뷰하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수년간 축적된 지력·종자 악화와 비료·농약·전기 등의 부족으로 해마다 쌀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 북 정부는 지난해의 수해와 올해 봄 가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도미와 군대미를 여느 해와 같이 정량 공출해갔다. 전국을 먹여살리던 대표적 곡창지대의 기아 사태는 권력에 의한 수탈과 오랫동안 축적된 사회 불평등으로 만들어진 인위적 기근이었다.

아시아의 진보적 경제학자로 알려진 아마티아 센은 기근이 자연재앙의 문제이기보다는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독재 체제에선 위기상황에서도 정권 연장을 최우선 목적으로 예산이 배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쉽게 굶어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센은 절대적 기아나 식량난은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15년간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 주민들을 만나온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 또한 "올해 북한 농촌에 닥친 기근은 자연재해의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간 무리하며 유지해 온 북한식 사회주의의 파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은 현재 시스템 피로가 누적돼 제일 중요한 곡창지대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며 "정권이 많이 약체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은 올해보다 (기근이) 더할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간부들은 국제사회에 지원을 당장 요청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근 자체보다도 그로 인해 발생되는 폭력과 범죄, 사회질서 붕괴, 극단적 개인주의가 지금 북한 사회를 더 병들게 하고 그렇잖아도 파탄난 인권을 벼랑으로 몰고 있었다. 강도와 살인 등 흉악범죄가 많아졌다. 황해도 노동당 중견간부는 살고 있는 마을에서 옥수수를 훔치면서 노인을 죽이고 달아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도적이 너무 많아 집을 잠그고도 마음을 못 놓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도 전했다. 아예 벽을 부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최근 간부들의 집이 더 많이 털리고 있으며 집을 지키고 있다가 칼침을 맞아 사망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황해도의 한 50대 의료관계자에 따르면 "죽은 사람이 머저리다. 강도질을 하든 살인질을 하든 사는 사람이 영웅"이라는 생각이 공공연히 퍼져 있다고 한다.

비경제활동 인구인 노인에 대한 천대도 심해졌다. 황해도 한 주민은 "부모를 모시지 않겠다는 자식들이 많아졌다"며 "밥만 축내니 제 부모를 짐승처럼 대하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최근 이 지역에서 자녀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이 많다고 한다. 황해도의 50대 중견 간부는 "먹고살기 힘들어 사람들이 다 거칠어졌다"며 "사회질서, 예의 이런 게 다 없어지고 지금은 오로지 약육강식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있었던 '사람고기' 유통 및 섭취 사건이 최근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평안북도에 사는 50대 남성은 "최근 몇 달간 굶은 집에서 갑자기 고기 냄새가 나 안전부가 조사를 나가보니 아우가 죽은 형을 먹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황해도 농촌 간부에 따르면 11명의 사람고기를 돼지고기처럼 유통시킨 사람이 지난 4월 총살됐다. 김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난생 처음"이라고 전했다.

기근이 장기화되면 "가족이나 그와 유사한 작은 단위의 인간관계마저 붕괴되고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기심이 증대된다"고 정병호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밝혔다. 그러나 그는 "사람고기 유통과 같은 문제는 극한 상황에서의 일탈적 현상"이라며 "북한 기근의 진짜 문제는 훨씬 지역적 편차가 크고, 국지적으로 심화된 상태로 퍼져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굶주림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오래 괴롭히는 것은 폭넓은 삶의 방식의 피폐와 같은 사회문화적 문제"라고 설명했다. 실제 인터뷰를 한 대다수의 황해도와 평안도 주민들은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국가를 더 이상 믿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전화 통화를 통해 인터뷰를 한 황해도 30대 상인은 최근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회 치안이 나빠져 도둑들에게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항상 있다"고 말했다. 잠시 중국에 머물며 막일을 하는 황해도 의료관계자는 "국가는 도적놈"이라며 열을 냈다. 국가 방침이 내려와도 이젠 사람들이 콧방귀만 뀐다고도 했다. 불평등에 대한 불만도 쌓여 있었다. "평양 사람들은 외부에서 굶어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만난 이들 중 대다수는 '인권'이라는 말의 뜻을 잘 몰랐다. 함경북도 주민 한 명은 "조선에서는 '인권'이라는 말 대신 '자유권'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자유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얘기했다. 그들에게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연방 가슴을 치던 한 황해도 주민의 말이 뇌리에 자꾸 남는다. "예의 바르던 우리 민족이 이제는 원시시대보다 더한 상태가 됐습니다. 가슴이 터져서 볼 수가 없습니다."

전병역·손제민(정치부), 송윤경(사회부), 심혜리(국제부) 기자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송윤경·심혜리 기자>

Saturday, September 15, 2012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연락해 올 때

한 동안 잊고 싶었고, 용서하고 싶었고 때로는 기도도 했건 만, 그의 연락을 받고서는 망설이고 있다.

참 내 마음엔 선한 것이 없다.
하나님,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당신의 뜻입니까?

왜, 이렇게 갑자기 연락해오는 것입니까?
당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싶고,
당신의 선하신 것에 기대고 싶습니다.
내 마음의 서운함이 무엇인지,
내 이기적인 기준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며, 선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거역하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망하는 길임을 당신은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원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길로 가길 기도하며
학교가 하나님의 학교로 서길 기도하면서,
선뜻 그 학교가 우리학교보다 잘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마음

위선적인 내 마음을 주님은 아십니다.
무엇을 아프게 했는지, 자신 만의 존재로 가득찬 그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 양 하지만 그로 인해 상처받고, 아픔받는 자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듯,,,,

그럴지라도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고, 기다리시고, 약속하셨다면,
하나님, 당신의 뜻을 거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면할 수 없는 건가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 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Sunday, September 9, 2012

9월 24일 여포성 종양 수술

아버지와 통화후 많이 울었다.
지난 여름 8월 한달 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하셨다. 교통사고로 수현이가 왔었을 때도 입원해 계셨고, 장염에 많이 토하고 힘들어서 퇴원하시고, 통원치료 하셨다고 하는데, 이 번에는 무릎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시는 중이셨다고, 전화를 받으셨다.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통화를 많이 못하기도 했고, 어머니 수술 문제로 궁금해서 핸드폰으로 일부러 전화를 드렸지만, 아버지는 본인의 모든 어려움을 과거로 둔 지금의 시점에서 아들에게 이야기하신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걱정하지 말고, 어머니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겨야지, 지금 많이 안아픈게 얼마나 다행이냐, 어머니 수술도 해야 하는데,, 보호자가 있어야지,, 너희는 걱정하지 말고, 계획한 일 잘 마무리하고, 열심히 하고, 오너라. "

많이 도 원망하고, 싫어했던 아버지, 미국에서 떨어져 있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더 해졌는데,

아버지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아버지의 목소리에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죄송스럽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없음에,,
한편으로는 너무 감사했다. 아버지의 믿음에

주님, 믿음의 아버지를 주셔서, 저에게 믿음을 물려주시니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사시는 아버지의 믿음을 물려 받을 수 있도록 하시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 그 동행하는 삶을 후손들에게 본으로 보이시는 그 아버지를 육신의 아버지로 보게 하시고, 허락하신 하나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Saturday, September 8, 2012

선교사 파송 세계 1위, 한국, 그리고 자살률 1위 한국.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한국에 있는 크리스챤들은 정말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 원하는가? 세상은 자살을 우울증의 탓으로 돌리려한다,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선교사파송 일등국가에서 만연하는 자살을....

<하루 42.6명꼴 자살…여전한 'OECD 1위' 오명>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고위험군 관리ㆍ성장일변 가치관 보완" 연합뉴스 | 김승욱 | 입력 2012.09.09 04:35 | 수정 2012.09.09 08:02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고위험군 관리ㆍ성장일변 가치관 보완"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지난 5일 오전 6시45분. 고교 2학년생 A(16)군은 서울 영등포본동의 한 아파트 19층 계단 창틀에 다리를 걸친 채 몸을 떨고 있었다.

A군은 중학생교통사고로 부모를 동시에 여의었다. A군은 형제도 없다. 그는 이 아파트에 혼자 살며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나갔다. 유일한 버팀목은 여자친구였다. 여자친구와 다투고는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전인 4일 낮에는 서울 가양동 한 아파트에서 B(52·여)씨가 수건으로 목을 매달았다. B씨는 자신의 이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어 남편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안방에는 유서가 있었다.

'우리 아들·딸,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

지난해 의욕적으로 주점을 개업한 B씨는 장사가 너무 안돼 빚이 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6월10일 새벽에는 서울 대림동의 5층짜리 건물 옥상에서 10대 중반의 C양이 펑펑 울면서 뛰어내리겠다고 소동을 벌였다. C양은 어릴 적 의붓아버지한테서 성폭행당한 아픔이 있다. 최근에는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아 상처가 겹쳤다.

세 사람은 모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설득과 만류로 현재도 삶을 영위하고 있다.

10일은 올해로 10번째를 맞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생명의 소중함과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2003년 제정했다.

자살하려다 삶의 의지를 되찾은 이들도 있지만 전국적으로 하루 수십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2010년 한국에서 자살한 사람은 1만5천566명으로 하루 평균 42.6명꼴이다.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31.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다.

9일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15.6%는 평생 한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3.2%는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통계청 자료를 보더라도 2010년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단연 자살(13%)이다. 청소년 10만명당 1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노인은 10만명당 81.9명으로 일본(17.9명), 미국(14.5명)과 비교가 안 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우울증이라는 질병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위원장)는 "우울증으로 인한 마음의 분노가 외부로 표출되면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된 '묻지가 범죄'가 되고 내부로 향하면 자살로 표출된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한국 사회가 성장 일변도로 가며 풍족해졌지만 개개인의 정서는 오히려 피폐해진 것 같다"며 "단기적으로는 자살 고위험군을 잘 관리해 전체 절반에 이르는 충동적인 자살을 막고,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성장 일변도 가치관을 감성적·철학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ksw0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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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September 3, 2012

Theology and philosophy for CE (Deuteronomy 4:1-14)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라라 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3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멸망시키셨으되, 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5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6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 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11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12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13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1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가 거기로 건너가 받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 "Now, O Israel, listen to the statutes and the judgments which I am teaching you to perform, so that you may live and go in and take possession of the land which the LORD, the God of you father, is giving you.
2"You shall not add to the word which I am commanding you, nor take away from it, that you may keep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your God which I command you.
3"Your eyes have seen what the LORD has done in the case of Baal-peor, for all the men who followed Baal-peor, the LORD your God has destroyed them from among you.
"But you who held fast to the LORD your God are alive today, every one of you.
5 "See, I have taught you statutes and judgements jsut as the LORD my God commanded me, that you should do thus in the land where you are entering to possess it.
6"So keep and do them, for tha tis your wisdom and your understanding in the sight of the peoples who will hear all these statutes and say, 'Surely this great nation is a wise and understanding people.'
7"For what great nation is there that has a god so near to it as is the LORD our God whenever we call on Him?
8"Or what great nation is there that has statutes and judgments as righteous as this whole law which I am setting before you today?
9"Only give heed to yourself and keep your soul diligently, so that you do not forget the things which your eyes have seen and they do  not depart from your heart all the days of your life; but make them known to your sons and your grandsons,
10"Remember the day you stood before the LORD your God at Horeb, when the LORD said to me 'Assemble the people to Me, that I may let them hear My words so they may learn to fear Me all the days they live on the earth, and that they may teach their children.'
11"You came near and stood at the foot of the mountain, and the mountain burned with fire to the very heart of the heavens: darkness, could and thick gloom.
12"Then the LORD spoke to you from the midest of the fire; you heard the sound of words, but you saw no form-only a voice.
13"So He declared to you His covenant which He commanded you to perform, that is, the Ten Commandments; and He wrote them on two tablets of stone.
14"The LORD commanded me at that time to teach you statutes and judgments, that you might perform them in the land where you are going over to possess it.

Saturday, September 1, 2012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사회의 지성인들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그의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나, 그리고 그는 조언을 한다.영원한 관점이 아닌 그의 관점으로, 그는 교육을 논한다.

사주를 따져보지 않아도 작가 이외수(66)의 말년운은 필시 드라마틱하게 좋을 터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던 유년 시절과 노숙자나 다름없이 궁핍했던 20대를 보상받기나 하는 것처럼. 40만~50만 명의 고정독자를 확보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사실은 접어두자. 이제 그는 책보다 더 넓은 세상인 트위터에서 140만 명의 '추종자'를 만들었다. 7년 전 이사 온 강원도 화천 집은 그들의 성지순례지가 된 지 오래다. 하나 더. 지난달 12일엔 집 바로 옆에 '이외수문학관'까지 문을 열었다. 대체 사람을 끌어들이는 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지난달 23일 그를 찾았다.

현역 작가로는 처음 문학관 열어

1992년 『벽오금학도』를 쓸 때 방 입구에 설치했던 교도소 철문. 현재는 문학관 내부에 세워져 있다. 작가는 "당시엔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고 회상했다. 철문의 문구는 『하악하악』의 한 구절로, '이외수체'라는 그의 독특한 필체로 씌어졌다. 이외수문학관엔 이외수가 있다. 당연한 말이 아니다. 그곳은 국내에선 유일한 현역 작가의 문학관이다. 관내엔 소설집 『벽오금학도』(1992)·『황금비늘』(1997)부터 산문집 『외뿔』(2001)·『하악하악』(2008)까지 그가 쓴 전권의 1판 1쇄 100권(개정판 포함)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이 밖에도 습작 원고와 직접 그린 그림, 원고 쓸 때 사용한 컴퓨터 등을 접할 수 있다. 문학관 내에 흐르는 음악도 그가 직접 컴퓨터로 작곡했단다.

기자가 문학관을 찾았을 땐 광주광역시에서 온 대학생 두 명이 작가와 막 인사를 나누던 참이었다. 그는 방문객들에게 전시를 설명하고, 가져온 책에 사인을 해주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청년들의 얼굴이 한껏 상기돼 보였다.

●하루에 몇 명이나 찾아오나.

 "휴가철이 끝나 지금은 많이 줄었다. 한 50~60명쯤? 한여름엔 하루에 200명씩 왔다. 강원도 피서객들이 한번씩 들러가는 코스로 삼은 것 같다."

●매일 여기에 나와 있나.

 "당분간 그래야 하지 않겠나. 못 해먹을 짓이긴 하다. 오전 6시쯤 잠들어 11시쯤 일어나는 '주침야활'이다가 갑자기 아침형 인간이 됐으니. 30년 넘은 생활 패턴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처음엔 오전 10시부터 나왔는데 휴가철이 끝나고는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근무시간을 줄였다.(웃음)"

●그래도 방문객들이 많아 뿌듯할 것 같다.

 "'뵙고 싶었습니다'라는 말을 참 많이 해주신다. 격려가 된다. 여긴 사자(死者)의 문학관이 아니라 생자의 문학관이라 좋다. 저자가 독자의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말해줄 수 있으니 궁금증이 남을 리 없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늘 새로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여·야 대선 후보들 차례로 찾아와

아내 전영자씨가 보관해 온 남편의 습작 원고. 이외수문학관에는 대선 주자들도 잇따라 찾아왔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지난달 14일 작가를 찾아 자신의 책을 주고 갔다. 손학규 후보 역시 문학관 개관식에 참석했다. 김두관 후보는 지난달 20일 새벽 강원도 화천에 있는 이씨의 집에 들렀다.

●야권 후보들만 오나 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특보도 얼마 전 다녀갔다. 언뜻 보기엔 내가 야당 편향성을 가진 것 같지만 집권 여당은 권한도, 한 일도 많으니 당연히 욕할 게 더 많은 것뿐이다."

●후보들이 오면 무슨 얘기를 하나.

 "여야 후보 모두 세상이 맑아지길 바라고, 나라 잘되기 바라는 게 진심으로 느껴졌다. 내 입장에선 기왕 만난 김에 불만도 얘기했다. 지금껏 여야를 막론하고 역대 대통령 공약에 문화예술 관련 공약을 앞세운 사람이 없지 않나. 우리도 이젠 그래야 할 때도 됐다고 했다. 만날 경제 살린다는 말은 지겹지도 않나."

●누가 가장 고개를 끄덕이던가.

 "내 앞에선 다 잘 끄덕였다.(웃음)"

●잘 보이려 한 것 같다.

 "그것보다는 공통분모, 140만 팔로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고 싶은 거겠지. 140만이란 숫자 정도면 보편성이 있는 거니까. 내가 주장하는 보편성이나 공통분모를 자기한테 창출시키려는 거다."

●그럼 한 수 가르쳐 줬나.

 "가르친다는 건 어폐고, 의논해 봤다. 우리나라가 뭐가 문제인지 모색하고 진단해 보고. 그들 모두 공감하는 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기본부터 다지는 교육으로 말이다. 가령 청소년이 카톡방에서 왕따를 당해 자살했으니 '스마트폰 사용'을 금하자는 식으로 해결하면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왜 그것이 잘못된 행동인지 가르치는 인터넷 인성수업이 교육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지난 총선 때는 지지 후보(새누리당 한기호)를 밝혔다가 욕도 많이 먹었다. 대선 후보에 대해선.

 "여야의 후보가 확실해지면 행보를 보고 누가 대통령 감인지 결정할 것이다. 트위터에 지지 후보도 밝힐 생각이다.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웃음)"

●선택 기준이 뭔가.

 "국민에 대한 사랑. 정치적 역량보다 마음이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

 "많이 베풀면서 살았나, 챙기면서 살았나 보면 된다. 그리고 또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느냐 하는 것이다. 과거 행적과 앞으로의 기반 모두가 중요하다."

●악플이 만만찮을 텐데.

 "내가 그 (인터넷) 바닥에서 십수 년을 살아왔는데, 온갖 악플러를 다 상대해 봤다. 나는 내 소신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굽히지 않는다."

안철수 교수에 대해선 언급이 없는데.

 "그 분은 말이 없다.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고. 책은 봤는데 바른 소리만 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알 수 없지. 실천이 문제다."

젊은 세대에 희망 주는 '존버' 정신

 그의 팔로어 수는 비연예인 중에선 가장 많다. '트위터의 대통령'이란 말도 그래서다. 관리도 철저하다. 하루 5~10여 개의 트윗을 올린다. 그는 '기인'처럼 보이는 외모와 달리 IT에 일찌감치 능했다. 처음 컴퓨터를 접한 건 1997년. 이전까진 엎드려 글을 쓰다 보니 눈과 허리가 나빠졌던 탓이다. 하지만 독수리 타법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아들이 '천리안'과 '유니텔' 등 PC통신에서 채팅을 해보라고 권했다.

 첫날부터 에피소드가 생겼다. 혼자 있는 대화방에 네티즌 한 명이 불쑥 찾아왔다. "안녕, 외수야." 그는 거리낌없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응? 안녕." 상대가 다시 물었다. "난 중학생이야. 넌 몇 살이니?" "응, 난 52세." "억!" 10대는 놀라 달아났다. 하지만 이제 그가 아들뻘·손자뻘 되는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건 자연스럽다. 60대 노인의 '훈시'가 아니라 위트와 유머가 담긴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는 말들을 자주 올린다. 트윗에서 자주 쓰는 '존버(존나게 버티자)'라는 말도 그런 맥락이다.

●'노인돌'이라 불릴 만큼 인기가 높다. 부담은 없나.

 "그들이 나랑 소통하며 스트레스도 풀고 좀 즐거웠으면 좋겠다. 요새 젊은이들은 참 불안정하다. 의기소침해 있고, 불평불만만 가득하고,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나라도 조언자가 돼줘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어른이 없는 시대라지만, 애들이 다 삭은 노인이 됐는데 어른이 뭐 필요 있나."

●이 시대 젊은이들의 큰 고민이 뭔가.

 "딱 하나다. '저는 취미도, 특기도, 소질도, 의욕도 없습니다. 저 뭐해야 하죠?' 이거다. 자기 인생을 놓고 뭐해야 하죠, 이러면 참 암울한 인생이다. 나는 이런 말을 해준다. 왜 20대에 출세를 하려고 하냐고. 20대에 성공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역량을 연마할 때다. 부모들도 20대에 성공하라고 재촉하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학교를 졸업하고 3~5년은 정해진 게 없어야 정상이다. 인생을 어디에 제대로 바치고 살 건지만 정해도 다행 아닌가. 너무 정답만 찾으려 하는 게 문제다. 수능이 얼마 안 남아선지 고등학생들은 만날 시험에 자신이 없다, 망칠 것 같다, 이런 푸념만 한다. 누구나 같은 처지다. 그렇다면 자신감을 먼저 가진 사람이 따고 들어가는 건데 말이다."

●'존버 정신'이 그런 건가.

 "같은 말이라도 젊은이들에게 '너희네 심정 이해한다. 근데 참아라' 그러면 얼마나 짜증나겠나. 차라리 걔네 식으로 '존나게 버텨' 이게 훨씬 낫다. 욕 하면서라도 버티면 되는 거다."

●정말 버티면 좋은 날이 오나.

 "나도 젊었을 땐 열등감투성이였다. 청춘이 괴로워서 손목도 그어보고 그랬다. 내가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한 개만이라도 잘해 보자, 그리고 여기까지 온 거다. 내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다면 굶주림과 불면에 강한 것이었다."

 한때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발을 들였다. 이후 신문기자와 학원강사를 하며 글을 쓰다 79년부터는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 시대 문인들이 그렇듯 그의 삶도 한없이 팍팍했다. 사회 밑바닥에 깔린 칙칙한 습기를 빨아들인 채 허름한 술집을 전전하는 게 일과였다. 겨울엔 너무 추워 길거리의 죽은 개를 방 안에 데려와 안고 잔 적도 있다고 했다. 그가 소설가 김성동씨와 여인숙에 함께 묵었을 때의 일화는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된다. 작가의 두 발이 덧버선을 신은 모양으로 시커멓게 때가 끼어 있어 주인이 놀랐다는 얘기다.

●결국 버텼다는 경험이 젊은층에게 먹히는 건가.

 "그렇다. 그리고 내 진정성을 아는 거다. 난 초딩이든 누구든 다 진지하게 답해 준다. 초등학교 3학년생의 멘션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인생에 대해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라고. 그래도 난 진심으로 얘기해 준다. 누구는 엄마 생일인데 좋은 메시지 보내달라고 하고, 누구는 시험 잘 보게 한마디만 해달라고 하고. 그럼 정말 마음을 담아 답해 준다."

●하루에 받는 멘션 수가 어마어마하겠다.

 "한 시간 동안 타임라인에 1000여 개가 쭉 뜬다. 그걸 거의 다 체크하고, 내 말이 필요한 것이면 다 해준다. 그러니 날 안 좋아하겠나."

●트위터만 해도 시간이 다 가겠다.

 "답변이야 그렇다치고 내가 올리는 글은 더 오래 걸린다. 문학적인 표현이 있으면 한 시간도 넘게 쓴다. 같은 내용을 일곱 번 고쳐 올리기도 하고. 그래서 똑같은 트윗 계속 올렸다고 언팔도 당하고.(웃음)"

 실제 그는 작품을 오래 쓴다. 소설 『벽오금학도』는 5년이 걸렸다. 그래서 작가 생활 30년 동안 소설집이 10권도 안 된다.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는 '묘사적 문체'를 만들어내려 하는 탓이다. 지난 12월에 내놓은 산문집 『절대강자』도 단문 모음이지만 비유마다 고심한 흔적이 오롯하다.

●트윗 글과 비슷하다.

 "맞다. 이제는 트위터가 글쓰기의 기초공사다. 습작 공간이자 정보 공간이고 소통 공간이다."

●다음엔 어떤 책을 쓰고 싶나.

 "불행한 시대를 사는 인간 전체를 끌어안는 글로 확장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물 위를 걷는 사람 얘기다. 그래서 요트도 장만했다. 물 가운데로 들어가 시각적으로 물에서 바깥을 봐야 하니까. 요트협회에서 이상한 용도로 요트 쓰는 사람이 나타났다면서 1억원대짜리로 구해 줬다. 화천강에서 춘천강까지가 배경이라 이미 세 번 왕복해 봤다. 아직은 구상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중이다."

묘비명은 '걸판지게 살다 간다'

 여기서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부인 전영자(59)씨가 들어와 '언제 끝날 것 같냐'며 눈치를 줬다. 그 사이 문학관 손님 30여 명이 되돌아갔다고 했다. 작가가 "당신이 대신 사인해 줘"라길래 농담인 줄 알았는데, 실제 방문객 중엔 전씨를 보러 오는 이도 꽤 있단다. 미스 강원 출신인 아내는 37년간 남편이 글쓰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운 조력자다. 전씨는 지금도 작가의 머리를 감겨 주고, 옷을 입혀 주고, 얼굴에 로션을 발라준다고 했다. 집안의 대소사, 남편의 스케줄 관리, 손님들 식사 준비도 그의 몫이다. 문학관에 있는 모든 과거의 흔적 역시 지금껏 아내 혼자 챙겨온 기록물이었다. 그는 아내를 제3자에게는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났나.

 "1975년 음악다방에서 DJ를 했다. 사모님이 손님으로 왔는데 내 의자에 앉더라. 다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니까 주인이 다른 의자랑 붙여서 자라고 특별히 사다 준 거였다. 그런데 사모님이 다방에 의자 주인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더라."

●싸우다 정 들었나.

 "사모님 친구가 와서 말씨름은 멈춘 뒤 내가 한마디 했다. '당신 예쁘니 자주 출몰해 주십시오. 제가 유혹해 보겠습니다'라고. 그러면서 날 틀림없이 좋아하게 될 테니 이왕이면 미리 좋아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사모님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나중에 들으니 사모님은 그때 '거지 같은 놈'이 만진 어깨를 도려내고 싶었다더라. 어떻게 복수해 줄까 하다가 내가 가난하다는 점을 건드릴 작전을 짰다. 저녁을 거하게 사달라고 한 거다. 그런데 난 가락국숫집 데려가서 외상 긋고 사줬다. 그 다음엔 당시 다섯 살이던 처남을 아들이라고 속이고 영화 좀 보여달라고 그러더라. 난 알았다 하고는 예전에 다녔던 강원일보 문화부 후배들을 시켜 표를 구해놨다. 사모님이 나중엔 화가 치밀어 오르다 어느날 '이 사람 정말 이상하다'고 느꼈단다. 다른 남자들은 없어도 있는 척하는데 이 사람은 그냥 다 드러내니. 그게 갑자기 좋아 보이더라고. 석 달 만에 말이다. 결국 진심은 통한다, 하하."

●진심, 아까 말한 진정성과 같은 얘긴가.

 "보통 결혼하고 애 낳고 늙어가며 타협하는 게 많아진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며칠 굶더라도 흔들린 적이 없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니까. 무엇이 옳은지 정답은 나와 있고, 그냥 따르면 그뿐이다. 4년 전 담배 끊을 때도 그랬다. 가족에게 약속한 뒤 금단 현상으로 수술을 받을 지경까지 갔지만 끝내 안 피웠다. 자꾸 구실을 만드는 건 머리에서 나오지 않나. 가슴을 따르면 된다."

 그는 스스로를 두고 "참 멋진 인생을 산 것 같다"고 했다. 어릴 적 동냥밥을 얻어먹고, 마흔셋까지 배 곯고 지냈는데 그래도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자유롭게 지냈다는 걸 뿌듯해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를 알아봐 주는 거지. 게다가 천덕꾸러기가 됐을 이 나이까지 오라는 데도 많고, 움직이면 돈도 생기니, 끝내주는 인생 아니겠어." 그는 20대로 돌아가면 뭘 하겠느냐는 질문에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중광 스님은 묘비명에 '괜히 왔다 간다'고 썼지만 난 반대다. 내 묘비명은 '걸판지게 살다 간다'다."

이도은.권혁재 기자shotg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