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12
ㆍ찌든 현대사회 최대의 화두… "과대포장 힐링상품 범람" 우려 목소리도
올해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최대의 화두는 힐링(Healing)이다. 치유를 뜻하는 이 한마디는 방송 프로그램뿐 아니라 대선후보의 정치행보에까지 그 이름표를 붙였다. 올 한 해 동안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힐링을 내세웠고, 심지어 먹거리까지 힐링을 광고하며 팔리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갑자기 힐링에 쏠린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위기에 대한 위기감과 고용불안에 대한 걱정, 사회적 소통 부재는 자살률 증대와 함께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묻지마 범죄의 위협은 방치된 지뢰처럼 세상을 공격하고 있다. 전통적 가족관계는 파괴돼 고시원을 전전하는 1인가구가 급증했다. 일찌감치 직장에서 밀려난 명예퇴직자들은 생존을 위해 이 일 저 일을 찾아나서지만 내일은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병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것이 우리에게 닥친 현실의 모습이다.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병원을 찾아 전문적인 진료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진료에 대한 편견은 병원을 기피하고 마음의 병을 키우기 십상이다. 그런 참에 힐링 코드가 등장했다. 소소한 것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다는 속삭임은 누구나 귀가 솔깃해지는 마법이다.
현재 힐링을 가장 많이 내세우고 그 혜택 또한 가장 많이 보고 있는 분야는 문화계, 그 중에서도 출판계다.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힐링 또는 치유라는 주제어를 검색하면 약 1000여종의 책이 나타난다. 아동도서부터 건강 관련 서적까지 분야 또한 광범위하다. 온라인 서점 인터파크 관계자는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의 주제가 힐링이라고 못박았다. 거기에 잘 팔리는 힐링 관계 책의 저자들이 주로 스님인 점에 주목하여 스님 더하기 힐링이 서점가를 사로잡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출판계 강타 초베스트셀러 기록
올해 100만부 이상의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서점가를 점령한 혜민스님의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은 이 같은 추세를 이끈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그 전에도 법정스님과 법륜스님 등의 책들이 출판가의 이슈를 만들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을 편하게 하는 내용이라 주목받는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사회 속에서 위로받고 싶은 바람이 이 책의 폭발적인 판매로 이어졌다고 본다." 혜민스님의 책을 기획한 쌤앤파커스 황은희 편집팀장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힐링 코드는 국내보다 미국 출판계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잡은 추세라고 한다. 다만 우리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세분화해 있어 에세이류보다 실질적인 지침서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미국 최대의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힐링으로 검색 가능한 책은 약 4만종 이상, 대략 20여년 전부터 꾸준히 출판되고 있다. 그야말로 힐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대적인 추세로 자리잡았다.
출판계 일각에서는 최근의 힐링 유행을 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그 첫째는 다양한 책들이 나와야 함에도 지나치게 한 가지 주제에 편중된다는 지적이다. 과거 출판계는 국내에서만 200만부 이상 팔린 < 시크릿 > 의 성공으로 한 해 동안 출간된 인문계열 서적의 3분의 1 이상이 자기계발 서적류로 도배된 적이 있고,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된다. 혜민스님의 책이 성공한 이후 지금 그런 조짐이 엿보이며 다양성의 파괴라는 측면에서 출판계에나 독자 모두에게 해가 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대중의 바람과 선택이 있는 한 당분간 힐링 주제의 책들이 꾸준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둘째는 힐링을 표방하고 있지만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힐링 관련 책들은 자기계발서의 연장으로 주관적인 경험과 주장에 불과하며, 어떤 객관적인 내용과 입증할 만한 이론이 없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종교인들의 책은 지나치게 감성에 의존하고 있어 그 후유증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간 내면의 문제를 과도하게 신비화하고 비과학적 처방에 의존하게 한다는 위험도 경계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힐링이란 상업적 목적에 의해 탄생한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힐링을 포함한 미국의 긍정 마케팅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작가 바버라 에렌라이크는 그녀의 책 < 긍정의 배신 > 에서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이 같은 시선은 자칫 사회적 강요로 작용할 수 있으며,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은 외면하고 비과학적이고 신비적인 힘에 의존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과 합의보다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여 결국 갈등을 더 깊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그 배후에는 베스트셀러를 노리거나 기업 교육시장 등을 기대하는 상업적인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신비화·비과학적 처방 경계해야
국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힐링 상품으로 내놓는 대부분의 것들은 과대포장에 불과하거나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 명상학과 정준형 교수는 힐링 상품의 범람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힐링 상품의 대부분은 자연과학으로 증명하기가 어려운 것들이다.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하나 그 효능은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면에 그치고 만다. 힐링 요법의 궁극에는 명상이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직면하는 힘을 키우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최대의 화두는 힐링(Healing)이다. 치유를 뜻하는 이 한마디는 방송 프로그램뿐 아니라 대선후보의 정치행보에까지 그 이름표를 붙였다. 올 한 해 동안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힐링을 내세웠고, 심지어 먹거리까지 힐링을 광고하며 팔리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갑자기 힐링에 쏠린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위기에 대한 위기감과 고용불안에 대한 걱정, 사회적 소통 부재는 자살률 증대와 함께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묻지마 범죄의 위협은 방치된 지뢰처럼 세상을 공격하고 있다. 전통적 가족관계는 파괴돼 고시원을 전전하는 1인가구가 급증했다. 일찌감치 직장에서 밀려난 명예퇴직자들은 생존을 위해 이 일 저 일을 찾아나서지만 내일은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병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것이 우리에게 닥친 현실의 모습이다.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병원을 찾아 전문적인 진료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진료에 대한 편견은 병원을 기피하고 마음의 병을 키우기 십상이다. 그런 참에 힐링 코드가 등장했다. 소소한 것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다는 속삭임은 누구나 귀가 솔깃해지는 마법이다.
현재 힐링을 가장 많이 내세우고 그 혜택 또한 가장 많이 보고 있는 분야는 문화계, 그 중에서도 출판계다.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힐링 또는 치유라는 주제어를 검색하면 약 1000여종의 책이 나타난다. 아동도서부터 건강 관련 서적까지 분야 또한 광범위하다. 온라인 서점 인터파크 관계자는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의 주제가 힐링이라고 못박았다. 거기에 잘 팔리는 힐링 관계 책의 저자들이 주로 스님인 점에 주목하여 스님 더하기 힐링이 서점가를 사로잡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출판계 강타 초베스트셀러 기록
올해 100만부 이상의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서점가를 점령한 혜민스님의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은 이 같은 추세를 이끈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그 전에도 법정스님과 법륜스님 등의 책들이 출판가의 이슈를 만들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을 편하게 하는 내용이라 주목받는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사회 속에서 위로받고 싶은 바람이 이 책의 폭발적인 판매로 이어졌다고 본다." 혜민스님의 책을 기획한 쌤앤파커스 황은희 편집팀장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힐링 코드는 국내보다 미국 출판계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잡은 추세라고 한다. 다만 우리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세분화해 있어 에세이류보다 실질적인 지침서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미국 최대의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힐링으로 검색 가능한 책은 약 4만종 이상, 대략 20여년 전부터 꾸준히 출판되고 있다. 그야말로 힐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대적인 추세로 자리잡았다.
출판계 일각에서는 최근의 힐링 유행을 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그 첫째는 다양한 책들이 나와야 함에도 지나치게 한 가지 주제에 편중된다는 지적이다. 과거 출판계는 국내에서만 200만부 이상 팔린 < 시크릿 > 의 성공으로 한 해 동안 출간된 인문계열 서적의 3분의 1 이상이 자기계발 서적류로 도배된 적이 있고,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된다. 혜민스님의 책이 성공한 이후 지금 그런 조짐이 엿보이며 다양성의 파괴라는 측면에서 출판계에나 독자 모두에게 해가 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대중의 바람과 선택이 있는 한 당분간 힐링 주제의 책들이 꾸준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둘째는 힐링을 표방하고 있지만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힐링 관련 책들은 자기계발서의 연장으로 주관적인 경험과 주장에 불과하며, 어떤 객관적인 내용과 입증할 만한 이론이 없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종교인들의 책은 지나치게 감성에 의존하고 있어 그 후유증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간 내면의 문제를 과도하게 신비화하고 비과학적 처방에 의존하게 한다는 위험도 경계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힐링이란 상업적 목적에 의해 탄생한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힐링을 포함한 미국의 긍정 마케팅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작가 바버라 에렌라이크는 그녀의 책 < 긍정의 배신 > 에서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이 같은 시선은 자칫 사회적 강요로 작용할 수 있으며,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은 외면하고 비과학적이고 신비적인 힘에 의존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과 합의보다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여 결국 갈등을 더 깊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그 배후에는 베스트셀러를 노리거나 기업 교육시장 등을 기대하는 상업적인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신비화·비과학적 처방 경계해야
국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힐링 상품으로 내놓는 대부분의 것들은 과대포장에 불과하거나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 명상학과 정준형 교수는 힐링 상품의 범람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힐링 상품의 대부분은 자연과학으로 증명하기가 어려운 것들이다.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하나 그 효능은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면에 그치고 만다. 힐링 요법의 궁극에는 명상이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직면하는 힘을 키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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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금산사에서 열린 템플스테이 행사 | 경향신문 |
최근의 힐링이 주목하는 부분은 관계효과, 즉 인간은 서로간의 유대를 통해 위로받고 심신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나마 집단적인 교류를 원한다는 것이다. 무명에 불과하던 혜민스님이 유명인사가 된 것도 트위터를 통해서이며, 혜민스님을 흉내낸 가공의 인물 효봉스님이 그 이상의 인기를 얻은 것도 익명의 세상에서나마 서로의 유대를 원하는 바람이라 볼 수 있다. 어찌됐든 힐링에 대한 높은 관심은 병든 사회가 내는 비명으로 들린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치유를 원한다면 문제의 회피와 일시적 충족감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하라고 권한다. 치유가 필요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진단하고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울증 등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는 과감히 병원을 찾아가고, 가식적인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건강한 사회활동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힐링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할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김천 <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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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적절한 치유를 원한다면 문제의 회피와 일시적 충족감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하라고 권한다. 치유가 필요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진단하고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울증 등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는 과감히 병원을 찾아가고, 가식적인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건강한 사회활동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힐링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할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김천 <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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