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28, 2013

박목사님의 설교와 상통하는 소리가 마음을 울립니다.

SNS 스타 목사’의 허를 찌르는 교회 이야기 <본질이 이긴다>
기독교의 야성(野性)과 교회 본질에 대한 통찰…<본질이 이긴다> 펴낸 김관성 목사
김민정 l 등록일:2013-12-06 15:20:09 l 수정일:2013-12-11 17:26:55

친구의 권유로 알게 된 SNS, 새벽기도 후 잠들지 않으려고 가족과 교회 이야기, 책을 읽고 얻은 통찰들을 하나씩 올렸다. 그런데 팔로워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어느 날은 목회 성공 팁에 관한 풍자적인 글을 재미 삼아 올렸는데 ‘폭풍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팔로워가 더 많아졌다. 최근 <본질이 이긴다>를 펴낸 김관성 목사(덕은침례교회)의 이야기다.

경기도의 한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사가 들려주는 교회 이야기는 혈기왕성한 젊은 목사의 치기 어린 글로 간주하기에는 그 울림이 깊고 명징하다. 이는 수천 명의 팔로워들이 매일 아침 그의 글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에게서 ‘상처 입은 치료자’로 불리는 김 목사를 직접 만났다.
 
▲최근 <본질이 이긴다>를 펴낸 김관성 목사를 그가 시무하는 덕은침례교회에서 직접 만났다.ⓒ뉴스미션

새벽기도 끝나고 올린 글들에 폭풍 공유…SNS 스타 작가로

“SNS 스타 작가요? 너무 부끄럽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페이스북을 알게 됐는데, 글을 길게 써도 되는 기능들이 있기에 내 생각들을 하루에 한 편씩 올려보자고 시작했던 겁니다. 그런데 파장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죠.”

특히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와 오스 기니스의 <악마의 비밀문서를 훔치다>를 한국교회의 상황에 맞게 풍자적으로 재해석한 글 ‘목회 성공하고 싶으냐? 내가 몇 가지 팁을 알려 주마’는 폭풍 공유와 함께 SNS 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글을 매일같이 프린트해서 냉장고에 붙여 놓고 묵상하는 가정주부에서부터 신학생과 목회자, 직장인, 청년, 비신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친구와 독자들이 그의 글을 기다린다. 그 비결은 뭘까.

신학교 시절 책벌레로 통하며 수많은 원서와 인문서를 독파한 그의 내공은 책 곳곳에서 나타난다. 평신도와 비신자가 읽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과 허를 찌르는 통찰력으로, 그는 우리가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속 시원하게 풀어낸다.

“종교개혁의 전통 위에 서 있는 교회라고 자부하면서 그들의 선조가 증거한 내용과는 아주 다른 내용의 설교를 전하고 있습니다. 청중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악해서 복음의 정신 앞에 굴복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지 않고 그들의 심리의 향방을 간파한 후 더 재미있고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패를 돌리는, 적당히 가공된 말씀을 곁들여 성공 비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의 교회는 종교 시장에 불과합니다. 종교 시장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좋은 시절은 좋은 시절대로, 힘든 시절은 힘든 시절대로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그런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 교회 공동체, 과연 우리에게 유익할까요?”

“자기 증명의 수단으로 전락한 목회 현장, 세속화로 이어져”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김 목사에게 물었다.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부름을 ‘자기를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이죠. 자기를 증명시키기에 가장 효율적인 세상의 방법들을 동원하게 되고, 그러면서 교회가 세속화 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큰 교회, 성공주의적인 설교, 목회자의 윤리 문제 등을 비판하지만 그 핵심에는 자기 증명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목회 현장이 있다는 겁니다.”
 
 ▲그의 책 <본질이 이긴다>

신자라고 예외일 리 없다. “신자들의 가치관이 완성되는 방식이 문제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이 내 속에 ‘복’이라는 이름으로 확보되고 주어지는 것, 그래야 기독교 신앙이 완성된다고 생각하죠. 교회에서 중직자가 되려면 기도와 말씀 생활, 봉사 열심히 하고 부자일 것. 사람들은 그 요건에 충족되지 못하면 고민합니다. 기독교신앙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죠.”

김 목사 자신도 ‘난 왜 이렇게 사나’라는 열등감과 자괴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존 파이퍼의 ‘우리가 그분을 만족케 할 때, 그분은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는 한 문장이 그에게 큰 해방감을 안겨줬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쌓은 업적과 성공으로 영광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신자로 부름 받은 것 자체가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는 것임을 깨닫고 그것이 삶으로 나타날 때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시하는 가치관과 도량형 잣대로 목회를 평가하면 안 됩니다. 큰 자리로 부름 받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신실하게 감당하고, 작은 자리로 부름 받은 사람은 그 자체로 꿀릴 것 없이 복된 사역을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본질은 유지하되 방법론은 다양하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방법은 반드시 본질에 영향을 줍니다. 분명한 건, 하나님은 한 영혼을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울 수 있는 목회자를 찾으신다는 겁니다.”

“가난과 폭력의 상처, 사람을 섬기는 도구가 되더라”

김 목사의 이야기에서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가족’이다. 그는 울산에서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고래 고기를 파는 어머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상처 많은 성장기를 보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아버지의 폭력으로 늘 자신감이 없고 두려움이 많은, 부정적인 자아상이 제 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일본인 작가가 ‘가족이란 보는 눈만 없다면 쓰레기처럼 갖다 버리고 싶은 그 어떤 것’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뼛속 깊이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환하게 웃어 보이는 김관성 목사ⓒ뉴스미션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주일학교 선생님. ‘관성아, 선생님이 사람 좀 볼 줄 아는데 너는 엄청 크게 될 사람이다. 절대로 잊지 마라’, ‘관성아, 선생님 인생의 전성기도 너를 만나고 시작됐어. 너를 가르치고 돌보는 것보다 선생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단다.’ 선생님의 이 두 마디는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그 인생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선생님을 통해 제 삶을 확장시켜 주신 거죠.”

그리고 하나님은 김 목사에게, 한 사람의 상처가 어떻게 치료될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주셨다.

“살아보니 상처가 없어지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아버지의 폭력과 가난에 시달려서 나타난 증상이 하나님 손에 놓이니 사람을 섬기는 도구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사물이나 사람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고 빠르게 포착해서 필요한 말을 해내는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인지 사람들과 상담하면 많이들 울곤 합니다.”

김 목사의 별명이 ‘상처 입은 치료자’인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교회를 향해 쓴 소리를 내뱉으면서도,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건네며 자신의 목회 양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목회자의 모습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끝으로 그의 책 일부를 인용하며, 그의 고군분투가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아내의 잔소리와 짜증을 따뜻한 미소로 겸손하게 받아 내는 일은 죽는 것보다 쉽지 않습니다. 남편의 발광을 인자함과 여유로운 이해로 수용하는 일은 순교만큼 힘든 것입니다. 순교는 일순간이지만 삶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중략) 눈을 뜨면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감당하십시오. 그것이 세상을 이길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믿음입니다.” -<본질이 이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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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November 9, 2013

대안학교의 현실, 과연 어떤 대안을 요구하는 가?

"초심 잃을까 두려워…" 교사 머물기 힘든 대안학교
부산지역 대안학교 교사 온갖 잡무 떠맡지만…임금은 일반학교 절반수준
2013-02-13 09:20 부산CBS 강민정 기자
획일화된 공교육에 대한 반발로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산에만 이미 20여 개가 넘는 대안학교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상당수 대안학교가 학생들의 수업료 부담이 큰 고비용 구조인데 반해 교사들의 임금은 일반 학교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쳐 열악한 근무조건이 잦은 이직을 낳고 있다.

부산에서 대안학교로는 유일하게 교육청 인가를 받은 연제구의 A고등학교.

학생의 80% 이상이 외국에서 정규학교 과정을 2년 이상 수학한 학생들로 구성됐고, 수업비는 일반계 고교의 두 배 이상이나 비싸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임금은 일반고교의 60% 수준으로, 경력 1년차 교사의 월급이 겨우 100만 원 남짓에 불과하다.

부산시내에만 20여 곳에 이르는 비인가 대안학교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학생들의 입학금과 수업비는 일반 학교보다 무려 4배 이상 높은 곳이 대부분이지만 교사 임금은 일반 학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과도한 업무 부담은 더 큰 문제다.

일반학교 교사가 보통 하루 한 번의 수업준비로 4~5시간의 수업을 책임지는 것과 달리, 대안학교 교사는 모든 학년에 걸쳐 심화과정과 기본과정까지 떠맡아 하루에 4번 이상의 수업 준비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안학교에 재직 중인 A교사(43.북구)는 "보통 일반학교 교사들은 한 학년을 맡아 수업지도를 하면 되지만 대안학교는 전 학년을 맡는 것은 물론 학년마다 기본반과 심화반으로 나뉘어져 있다"면서 "1시간 수업 준비하고 1학년 가르치고 또 1시간 준비해서 2학년 반에 들어갔다 나오면 3학년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여기에 학교 청소와 기숙사 생활지도 등 잡무까지 떠맡으면서, 입시교육에 벗어나 학생 중심의 교육을 실천하자는 초심을 잃어버리고 다시 제도권 교육현장으로 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 다른 대안학교에 7년째 근무하고 있는 B교사(여.36.사상구)는 "적은 인력에 수업지도에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교장 선생님의 외부 행사에 까지 동원될 때면 '왜 대안학교에 왔나'하는 회의가 든다"며 "매년 30% 이상의 교사가 그만두고 일반학교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지원없이 교사의 무한 희생과 학부모의 비용 부담에만 의존하고 있는 대안학교의 현실은 고스란히 학생들의 피해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연제구의 A 대안 고등학교는 "수업비가 두배 가량 높고 학생 정원의 80% 이상이 외국에서 정규과정을 이수한 것은 맞지만, 10% 가량이 새터민과 기초생활 수급 가정 자녀들로 구성돼 있다"고 밝혔다.
kmj@cbs.co.kr

Thursday, November 7, 2013

굼나제대안학교


발가벗고 띄는 新출애굽 학교



꼴지들의 대안학교로 잘 알려진 세인고등학교. 꼴지에 가까운 성적을 가진 아이들이 인성교육과 지적 개발을 통해 3년만에 90% 이상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갈 만큼 뛰어난 학습효과를 나타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상을 품은 인간’이라는 뜻의 ‘세인’의 설립을 처음부터 기도로 준비하고, 설립의 근본 바탕을 마련했던 사람이 초대 교목인 이재문 목사(45)다. 그는 지난 3월 16일 현재 8명의 학생과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함께 하는 굼나제청소년 학교를 시작했다. 잘 나가는 세인고를 그만 두고 비인가 대안학교인 굼나제를 시작했던 그의 사연은 무엇일까.

‘말’만 있고 ‘삶’이 없는 교육
이재문 목사가 세인고라는 대안학교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전주권에서 초교파적으로 10명으로 구성된 ‘주님을 사랑하는 교회 모임’에서였다고 한다. 서로 모여 기도와 전도, 나눔의 교제를 하던 중, 청소년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차에 ‘종교계가 나서서 대안학교를 전국에 시범적으로 세웠으면 좋겠다’는 뉴스를 듣게 됐다. 알고보니 당시 소년원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40%가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는 통계가 나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법무부에서 교육부에 제기했던 것이다.

이 목사는 대안학교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경험이 한 가지 있다. 서울에서 중학교 졸업을 2개월 남겨놓은 여학생이 문제아로 찍혀, 가는 곳마다 받아주지를 않아 학부모가 이 목사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이다. 그 학생은 공부도 잘하고 부모와도 특별한 문제 없이 잘 지냈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때 선생한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매를 맞아,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선생님이 미워졌고 비뚫어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결국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이 아이를 문제아로 낙인찍었고, 가는 곳마다 적응하지 못하게 됐다.

이 목사는 이 여학생을 자신의 딸과 같이 생활하게 하면서, 기독교학교에 연결시켜줬다. 교장이 장로님이고, 선생님들이 기독교인이니깐 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졸업 1~2개월을 앞두고 교장한테서 ‘데려가라’는 연락이 왔다. 담임선생님 얘기로 특별히 사고를 친 게 아니라, 사고를 칠 위험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여학생이 다른 학생들과 함께 서울에 놀러가자고 하며, 주고받던 쪽지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를 선생은 학생들을 꼬드겨 가출하겠다는 의도로 받으들였고,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얘기었다. 

법없이도 살 분이라고 소문난 여학생의 아빠까지 내려와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해도 무조건 안된다고 거절했다. 이 목사는 “무슨 소리냐? 예수님은 소를 위해서 사신분이었고, 각자 나 한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셨는데, 어떻게 기독교 학교가 이럴 수 있느냐?”고 애원해도 소용이 없다는 거란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모 교회의 목사 사모였어요. 그러니깐 더 화가 난 거에요. 제가 목사 아니었으면 참지 못했을 거에요. 진짜 예수를 모시고 사는 사람인가라는 의구심이 들더라구요. 아무리 사정해도 안되는 거에요. 그 때 제가 울었어요. 기독교학교면 이 사회와 교육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거에요. 가르침은 있지만, 예수 정신은 없고 실천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곳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미션스쿨이 다 그렇더라구요.”

그 여학생은 영문도 모르고 왜 가냐고 묻자, 사정을 말하자 펑펑 울었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하려고 결심했는데, 안된 것이다. 그후 그 학생은 지금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중이다.

제대로 된 신학교 만들기
이 목사는 처음엔 대안학교가 아니라, 신학교를 세우려고 20년 가까이 기도해왔다. 입은 있으나 삶이 없고, 자기 이름과 명예를 위해 목회하는 목사 세계의 비리들을 알게 되면서, 신학교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해외 유학을 했다고 해서 제대로 된 목회자 찾아보기 힘들어요. 목사로서의 영적이고 인격적인 훈련이 돼 있지 않아요. 제가 볼 때, 우리 기독교는 너무나도 우습게 목사가 되는 것 같아요.”
카톨릭의 타락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는데, 이 타락은 사제들을 적당히 교육시켜서 대량으로 배출시킨 데서 비롯된 것이다. 신학교에서도 목사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교육을 시켜야 되는데 그것이 없다. 혼자 알아서 해야 되는 상황이다. 이런 교육 부재에 있어서, 공동체 교육 부재가 가장 심각하다. 개인적으로는 공부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한다고 하지만 공동체 속에서는 ‘나만 예수 잘 믿으면 된다’는 개인주의의 모습으로만 나타난다. 
이런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파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이 목사는 제대로 된 신학교를 세워, 제대로 된 목회자들을 배출하고 싶었다고 한다.

마이너스 교육을 플러스로 우여곡절 끝에 세인고가 세워졌다. 많은 사람들의 만남과 섬김, 투자가 있어야 가능한한 학교 설립에 부자보다는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1만원, 2만원 헌금하고 기도해준 것들이 밑바탕이 됐다. 폐교된 건물을 개조해 열악한 상황에서 학교를 시작했다. “세인고 1회 졸업생들은 정말 문제아가 많았어요. 학부모님들이 ‘졸업하지 못할 아이들이 졸업하게 됐다’며.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는 거에요. 정말 교육은 한 걸음에서 출발하는 거에요.”

세인고는 순수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대안학교로서는 최고 성공을 거둔 곳으로 평가 받는다. 홍보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입시 경쟁율이 보통 남자의 경우 8:1, 여자의 경우 12:1 정도 된다. 떨어진 아이와 학부모들은 엄청 울고 난리였다.
“제가 보기엔 다 똑같아요. 떨어뜨릴 아이가 없다는 거죠. ‘대안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서 온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구제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문제는 세인고에서도 아이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는 애들이 많다는 점이다. 견디다 못해 전학하는 아이들이 많고, 수업시간에 잠자는 애들도 많았다. 학교가 싫어서가 아니라,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전학하는 애들도 있다. 아무리 좋은 학교라도 아이의 적성에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목사는 더욱 고민에 빠지게 된다.
또 하나는 외부에서 많은 상담요청이 온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새벽열차를 타고 학교에 오는 부모들도 있다. 그분들은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울면서 호소한단다. 통계청에 의하면 학교를 다니다가 중도에 포기하거나 탈락하는 아이들이 1년에 7만명에서 8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 중 인가든 비인가든 모든 대안학교가 다 받아들인다고 해도 1천명이 안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인데, 이 사회에 이들을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이러한 여러가지 종합적인 이유 때문에 이 목사는 “누구든지 오면 다 받아들일 수 있고, 적응할 수 있는 학교를 세우자!”고 결심했다. 이 목사에 의하면 기존의 70~80%의 학생이 마지못해 어쩔수 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 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꿈은 기존의 교육과목을 동일하게 강조하는 억압된 구조가 아니라, 여기에서 벗어나 그들을 구출시킬 수 있는 ‘굼나제’라는 페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한다. 

굼나제의 철학과 이념
벌거벗고 열심히 연습하라
‘굼나제’는 디모데전서 4장 7절의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말씀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연습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귐나조’에서 따온 말이 ‘굼나제’다. 귐나조는 벌거벗은 채로 운동하다, 훈련하다, 단련하다, 연습하다, 연단하다 등을 뜻하는 말이다.

체육관을 뜻하는 ‘김나지움’ 또는 ‘짐나지움’은 이 말에서 파생한 것이다. 운동선수들이 체육관에서 경기를 위해 피눈물나게 연습하는 것처럼 경건의 연습을 철저히 하라는 얘기다. 공부를 훈련이라는 말로 보는 것이다.

굼나제는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연습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의식과 사고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새로운 의미로 교육을 해보자는 뜻도 포함돼 있다. 복음이라는 것 자체가 의식변화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는 새창조를 이루는 것이다. 복음 자체가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게 한다는 뜻이다. 또 이렇게 기존의 낡은 의식을 뒤집어 엎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이다.

우리의 선택과 필수는 다르다
굼나제는 기존의 커리큘럼을 적용하지 않는다. 기존의 커리큘럼에서 필수과목인 국어, 영어, 수학은 선택과목으로 두었다. 이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할때, 하게 만들겠다는 이 목사의 의도다.
교육을 필수와 선택과목으로 구분해놓은 것은 반드시 있어야 되는 일이다. 이 목사는 하나님께서도 이런 방식으로 실행하셨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필수고, 동산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으라는 것은 선택이다. 따라서 필수과목은 반드시 해야 될 중요한 과목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받아야 될 필수과목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 나라의 교육이다. 곧 영적 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인간 본래의 모습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전인건강에 대해 기존의 육적 건강, 정신적 건강, 사회적 건강에 영적 건강이라는 항목을 포함시켰다.
두번째, 사람 관계 교육이다. 인간은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복을 좌우한다.
세번째, 달란트 교육이다. 달란트는 재능과 성격, 성질 등을 다 포함하는 말이다. 달란트는 하나님이 태어날때부터 이미 주신 것으로, 본래적인 것이다. 더불어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다양한 것으로 고유성이 있다. 마태복음 21장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어린 나귀, 주인, 제자, 어린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각자 고유한 목적에 쓰임을 받고 있다. 보석이 찾아서 닦아야 빛이 나듯 고유한 달란트를 빨리 찾아 개발시키고 극대화시켜야 된다.

관심은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주인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관심은 주님께 두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께서 우리 삶을 이끌어가신다. 이밖에 달란트를 찾는 방법엔 관찰, 유전, 적성검사 등이 있다.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사43:1), 이는 내가 받은 것을 찾아 극대화시킬 때 가능하다. 극대화되어 행복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이처럼 행복은 받음과 줌이 있을 때 온다. 받기만 하고 쓸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하다. 행복은 받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줄 때에 오는 것이다.
굼나제에서는 2만가지로 세분화된 다양한 분야에서 제2의 빌게이츠, 제2의 스필버그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장을 견학해서 관찰하게 하고 경험하게 한다. 이것도 달란트를 찾는 방법 중 하나다.

달란트를 찾는 최종적인 방법은 기도다. 시편 37편 23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고 했다. 곧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로 갈 때에 가장 정확한 것이다. 이런 방법들을 종합할 때 정확한 달란트를 찾을 수 있다.



달란트교육의 핵심은 신앙이다
실천 없는 신앙, 왜곡된 신앙은 결코 성숙된 신앙이 아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라는 말씀이 있다. 가르침과 교제, 봉사가 함께 어우러져야 신앙의 성숙이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천의 하가지 방법이 봉사다. 굼나제는 매주 봉사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글 읽어주기, 청소, 설겆이, 목욕, 빨래, 놀아주기 등 모든 분야에서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봉사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체험을 시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봉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부터가 봉사의 시작이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웃부터 봉사를 하게 한다. 이것을 통해서 복음이 들어가는 것이다. 말로만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해서 신앙교육, 하나님나라의 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 밖에도 자기관리 프로그램에 몸, 영혼, 마음, 시간, 물질, 일 등을 관리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자기관리는 철저하게 습관화되도록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언어관리, 표정관리도 교육에 포함돼 있다. 표정도 끊임없이 훈련돼야 한다. 이에 굼나제는 이미지 관리 전문강사가 반복적인 훈련을 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굼나제는 받은 달란트의 실력자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인격자요, 신실된 신앙의 소유자로 만드는 것이다. 한 마디로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문의 : 063-211-1318)





  이근세 군(17세)
“입학한지 16일 됐는데, 왠지 편해요. 옛날엔 학교에 가면 잠만 자는 게 일이었는데, 지금은 즐겁게 공부할 수 있어 좋답니다. 또 내 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승연 양(19세)

“여기 오기전에 일반 학교를 다니다가 두번이나 그만 두었죠. 그동안 살고싶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곳에 오니깐 뭐든지 배우고 싶어요.'


 

Saturday, November 2, 2013

개혁주의 신앙의 교육적 구조

아이들에게 항상 이런 식의 사고를 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창조:
하나님의 생각, 선한 생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advice or counsel
하나님의 바램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
하나님의 기대
하나님의 처음 생각

타락:
우리들의 불순종
삐뚤어진 우리들 모습
그른 생각
왜곡된 하나님의 바램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우리




구속:
순종의 모습
예수님의 도우심
주님처럼
처음처럼
예수님과 함께라면
예수님의 제자로
하나님의 바램대로 주님과 함께

이러한 타이틀을 가지고 항상 판단하고 세상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사고방식을 갖도록 돕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대안으로 잠언을 가르쳐 보자!

개혁주의 기독교교육의 원리와 실제

http://blog.naver.com/kjyoun24/60201341378
education that is christian
the clue to christian education
education for Christian living.

[기독국제학교 특집-쉐마기독학교 FWCI] 성경 중심 쉐마교육 기초 위에 美 본교 과정 이수

[기독국제학교 특집-쉐마기독학교 FWCI] 성경 중심 쉐마교육 기초 위에 美 본교 과정 이수

  • 2011.11.0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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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이미지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에 있는 쉐마기독학교는 국내 최초로 ‘성경 중심의 쉐마교육법’을 도입해 유명하다. 학교는 올 초 정부로부터 학력까지 인정받으면서 명실상부한 크리스천 대안학교로 자리잡았다. 이 학교 안에 올 초 국제학교가 생겼다. FWCI(Fort Worth Christian School International)로 FWC의 분교다. FWC는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 지역의 유명 사립학교다.

FWCI를 졸업하면 다양한 특전이 주어진다. 미국 본교 졸업과 동일한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텍사스 주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하면 본교를 졸업한 학생과 같은 액수의 학비를 낸다. 이는 일반 국제학생의 3분의 1 수준이다.

또 FWCI 고 2, 3학년 때 AP(Advanced Placement) 과정을 수강하면 학점이 인정돼 미국 대학을 3년 만에 졸업할 수 있다. FWC 본교 편입도 쉽다. 별도의 시험 없이 인터뷰만 통과하면 된다.

FWCI를 졸업하면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서 고등학교 졸업학력을 인정받는다.

◇FWCI의 기본 과정=FWCI는 쉐마기독학교의 커리큘럼이 기본이다. 교육의 목표 역시 성경 말씀 안에서 크리스천 리더를 키우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앙이 최우선이다. 학생들은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1교시 전 담임교사와 함께 ‘쓰면서 하는 QT’를 한다.

일과 후에는 성찰학습을 한다. 반별로 이뤄지는 자발적 기도회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철야예배 드리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특히 예배에 참석만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모든 예배와 행사를 주관한다. 학생들은 설교이외의 모든 순서를 직접 준비한다.

또 다른 특징은 철저한 공동체 생활이다. 아이들은 초등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기숙사에서 지낸다. 윤주월 교감은 “함께 생활하면서 의사소통 방법을 익히고 리더십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기숙사에서는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자신의 의견을 이해시켜야 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고학년이 되면 저학년을 이끌어야 한다. 팀장이 되면 모든 학교 행사를 주도해야 한다. 새벽마다 아이들을 깨워 예배에 참석하도록 하는 것도 팀장 몫이다. 이런 과정이 아이들을 리더로 키운다는 것이다.

2006년에 개교,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쉐마기독학교 학생들은 이미 눈에 띄는 열매를 맺었다. 현재까지 졸업한 학생 48명이 모두 대학에 진학했다. 4명은 미국과 중국에 있는 대학에 진출했다. 윤 교감은 “이들의 진학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변화된 삶”이라며 “베이징 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아프리카 오지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는 고백을 하더라”고 말했다.

이외에 ‘아가피아 독서학습’은 쉐마기독학교의 랜드마크다. 아이들은 회상 학습, 선택적 요약, 정교화 요약, 마인드맵 그리기, 감상문 쓰기 등 총 5단계로 책을 읽는다. 소단원을 읽고 문장 떠올리기, 주요 내용에 밑줄 긋기, 읽은 내용을 자기 언어로 설명하기, 전체의 맥락 이해 및 발표하기, 논평하기 등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사고력이 확장된다.

◇FWCI의 미국 본교 과정=FWCI는 이 같은 교육 외에 미국 본교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른다. 오전에 쉐마기독학교의 한국교과 과정을 배우고 오후에는 영어, 역사, 과학, 미술 등을 영어 교과를 배운다. 본교에서 파견한 원어민 교사가 가르친다. 또 저녁에는 악기와 태권도를 배우고 ESL과목 등을 공부한다.

커리큘럼뿐만 아니라 학습 지도, 성적 처리 등도 본교 규정에 따른다. 성적 처리도 본교에서 직접 한다.

FWCI 학생들은 대부분 글로벌 리더를 꿈꾸며 해외대학 진학을 꿈꾸는 아이들이다. 학교는 이를 위해 SAT, TOFEL 지도를 병행한다.

FWCI에서 이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입학한 학생 50명 중 7명이 올 겨울 미국 본교에 편입한다. 이들은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것은 물론 수업도 가능하다고 평가받은 것이다.

윤 교감은 “수업시간의 영어 이해도가 초반에 20%이던 아이들이 1년도 안 돼 70%를 상회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교과나 성취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생활지도다. 학생들은 흡연, 음주, 폭력, 컴퓨터 및 휴대전화 사용이 철저히 금지된다. 이를 한번 어기면 바로 퇴학이다.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니코틴 검사도 받는다.

윤 교감은 “흡연, 음주보다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컴퓨터와 휴대전화 사용 금지라면서 입학한 후 한동안 금단현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금방 적응한다”며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공부, 운동, 연주뿐”이라고 웃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학교가 본래 이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입학 문의는 쉐마기독학교 홈페이지(ishema.org)나 전화(031-858-3144)를 이용하면 된다.

Tuesday, October 29, 2013

코피노를 아십니까? 필리핀에 한국 아이들, 주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

http://durl.me/6a7mg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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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ANC▶

필리핀에 한국인 아빠에게 버림받은 혼혈아들이 이른바 코피노가 2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연속기획 코피노의 눈물, 오늘은 그 첫 순서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코피노 가족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남형석 기자입니다.

◀VCR▶

해마다 한국인 40만 명이 찾는 필리핀 휴양도시 세부의 라푸라푸 시티.

제인 양은 5평 남짓한 방에서 여섯 식구와 함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제인 양이 딸을 낳으며 식구가 더 늘었습니다.

아빠는 40대 한국인 사업가.

지난해 16살 고등학생이던 제인양과 사귀다, 임신 사실을 알자, 곧바로 종적을 감췄습니다.

◀SYN▶ 메리 제인(17)

"(자기가 쓰던) 화장품 다 떨어져서 한국 간다고 해놓고 그 뒤로 연락이 없어요. 갈 때 '다시 오겠다'며 5천 페소(12만원) 쥐어 주고 갔어요."

유난히 하얀 피부.

영락없는 한국 아이 얼굴을 한 6살 붕붕이의 아빠도 한국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빠는 붕붕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자취를 감췄고, 홀로 대도시에 돈을 벌러갔던 엄마도 작년에 사고로 숨지며 고아가 됐습니다.

◀SYN▶ 붕붕(6)

"(엄마가 누구야?)

(아빠는?)..."

이렇게 세부의 골목골목을 걷다보면, 누가봐도 한국인처럼 생긴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현재 필리핀에 있는 코피노 인구는 2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데요, 이들 중 한국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21살 베르딘 양 역시 두 달 전 한국인 여행사 직원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뿐.

◀SYN▶ 베르딘(21)

"아기 병원에 데려갈 돈이 없다고 하니까 그는 '나는 너의 은행이 아니야'라며 거절했어요. 그 말 뿐이었어요. 은행이 아니라고..."

아이 아빠는 결국 단 한 번도 자신을 쏙 빼닮은 아이를 보지 않고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SYN▶ 아이 아빠

(애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해요.)

"뭐? 그래서 어쩌라고?"

(아이가 걱정되지도 않아요?)

"전혀"

(참 좋은 아빠군요.)

필리핀에서 현지 여성과 사귀다가 아이가 생기면 버리고 떠나는 한국인 아빠가 10년새 10배쯤 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만큼 반한 감정도 커지고 있습니다.

◀INT▶ 헤로이/필리핀 여성 단체 회원

"필리핀 사람들은 모든 한국인들이 필리핀 여성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멀리 타지에 버려진 또 다른 우리의 아이들.

그들은 오늘도 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MBC뉴스 남형석입니다.

(남형석 기자 namgiza@mbc.co.kr)

[저작권자(c) MBC (www.im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Friday, September 27, 2013

국내 체류 외국인 5대범죄 4년간 60% 증가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저지른 이른바 5대 범죄(살인, 강도, 강간·강제추행, 절도, 폭력)가 지난 4년간 6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강기윤(새누리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5대 범죄를 저질러 검거된 외국인은 2008년 6천679명에서 지난해 1만720명으로 4천41명(60.5%) 늘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죄목별 검거 인원은 살인 87명, 강도 188명, 강간·강제추행 355명, 절도 1천682명, 폭력 8천408명이었다.

국적별로는 중국이 6천354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베트남 775명, 미국 642명, 대만 176명, 태국 163명, 러시아 118명, 일본 56명 등이었다.

대표적 외국인 밀집지역 관할 경찰서의 지난해 외국인 5대 범죄 검거는 서울 영등포 652명, 서울 구로 520명, 경기 안산단원 460명, 경기 시흥 351명, 서울 용산 314명, 서울 금천 232명이었다.

강 의원은 "다문화 사회로 진입이 본격화하면서 외국인 범죄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의 지문을 확보하는 등 경찰과 자치단체, 법무부 3자 간 긴밀한 협조로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Friday, August 9, 2013

신앙은 이상주의적으로 가지 않아야 합니다.(몸이 무익한 것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우리의 믿음이 실려서 신앙이 들어나야 한다. 결국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삶의 변화나 행동의 변화가 없이는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영과 육체를 분리할 수 없는 준재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인간의 영역에서 회복되어야 하고 그 분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고린도전서 096 / 몸의 변화 / 고전 15:35-44 / 1993.07.21
고린도전서 96 / 몸의 변화 / 고전 15:35-44 / 1993.07.21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이 설교에서 부터

"신앙이 이상주의로 가지 않고,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선한 의도와 일들을 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내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선행과 열심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주를 향한 어떤 충성심을 다 이루기 위해서 어떤 방해 요소들이 없이 좋은 조건들만으로 완성되는 것을 신앙이라고 하지도 않고 신앙의 가장 좋은 환경이나 방법이라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이상주의 속에는 내 육체가 약해서 내 마음의 소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라는 사고 방식이 어떻게 많이 만연되어 있느냐면, 제일 많은 게 이거예요.
목사님이 완전하다면 이런 사고 방식입니다.
....
이거는 성경이 이야기 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교회안에는 전혀 이견이 없고, 우리를 시험하는 사건이나 사람이 없고, 시대도 우리를 편들고, 우리도 시대를 주도하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무슨 성도들이 요구하는 것들 중에 이런 것들이 많아요.
교회가 ..

교회는 어디 있어야 하냐면, 필요로 하는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있고, 거기 하나님이 부르신 영혼이 있고, 그들이 쉽게 달려나와 영적인 가르침을 받고 인도함을 받는데에 가장 적합한 곳에 있어야 합니다. 외적인 모습이나 기구나 다른 무엇보다도 그런 편리한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얼마나 커야 되느냐? 그건 아브라함링컨이 이야기한 것이 답입니다. ..

교회는 얼마나 커야 되는가? 거기 나오는 성도들이 와서 앉아서 예배볼만큼만 크면 됩니다...

교회안에 이런 것 저런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 교회는 이렇고 저랬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은 다 우리 안에 가진 순진한 생각과 고결한 이상이 힘을 갖지 않고도 난관을 극복하지도 않고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응석입니다. ..

첫사랑을 이룬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왜 그러죠? 그 때는 첫사랑이라는건 목숨을 걸고합니다. 젊은 날에, 그런데 왜 안 이루어지죠. 열심이 없어서도 아니고, 진지하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그들은 사랑을 이룰 만큼 지혜와 실력과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얼마나 진지한가 소원과 열심과 그 희생정신을 갖고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이룰 실력이 있어야 됩니다. 영육간에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안됩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처음부터 무엇을 창조하셨고, 무엇을 목적하셨는지 놓치지 말란 말이예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으셨어요, 진흙을 빚어 지으시고, 우리에게 온 천하 만물을 지으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뜻이고 우리에게 허락한 복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놓고 나면, 구원과 내세를 향한 모든 목표가 이상주의가 되고 관념론으로 흐르게 됩니다. 그럼 사실이 문제가 아니고 도를 깨우치는 것이 문제가 되고 깨우치고 아는 것으로 끝날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안계시냐가 아니라 선과 의로 갈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앞으로가 아니라 선으로 가는 것, 의로 가는 것, 도덕이 되어버릴 수 가 있고 득도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

그 중에 하나가 도벽이 있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 아무개가 도둑질을 했는데 왜 했느냐고 물어봤는데 여름 수양회를 가고 싶은 데 수양회비가 없어서 훔쳤다고 하더랍니다. 이녀석을 데리고 가야 됩니까? 안데려가야 됩니까? 라고 저한테 물었습니다. ...

데려갈 수 없다. 그 물은 학생이 반문했어요.
기독교는 회심을 시켜야 하는 종교고 사랑을 해야 되는 종교아닙니까? 어떻게 안데려갑니까?
그래서 제가 얘기 했죠.
그를 회심시켜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도둑놈 하나를 위해서 나머지 사람을 희생시킬 수 는 없다. 우리는 혼동해요 아흔아홉마리양을 우리에 나두고, 한마리 양을 구하러 가는 것은 아흔 아홉이나 됐다고 해서 만족하지 않는 다는 뜻이지 우리에 들어 와 있는 아흔 아홉마리보다 음침한 골짜기에 가있는 잃어버린 양이 더 귀중하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쯤 없어지면 어떠냐 이런 마음은 아니라는 말이죠. 그는 지금 도벽이 있습니다. 그를 데려가서 나머지 학생들의 신앙생활을 분명히 방해시킬 것을 우리가 그대로 방치할 순 없습니다. 그를 따로 기회를 주고 교화시키고 지도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같이 섞을 수는 없죠...



지금 신앙새활에서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사고와 열심을 몸으로써 나타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로마서 12장1절

진심이전에 몸이예요. 진심을 몸에 실어서 보내세요. 예의를 지킨다는 것,, 그런 것들은 실력입니다. 우리는 형식주의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형식이 없이는 내용을 담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가진 진심이 형태로 나타나지 않으면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크게 시험을 받는 것은 뭐냐면 ....

우리가 진심을 가지고도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요.
모두가 표정을 말을 좋게 하는 연습을 하셔야 행동이 좋아집니다. 말과 표정을 좋게 지으시고, 행동을 바꾸세요. 예의를 지키세요.

Wednesday, August 7, 2013

능력있는 사람의 조건; 교육의 목적은 능력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과 성경은 다른 능력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교육의 목적도 달라야 한다. 그렇다면 그 능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는가? 또 그런 사람의 인격은 어떻게 다른가?

출애굽기 18장에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에게 조언한다.

일의 중함으로 필경 백성과 모세 자신이 지쳐버릴 것을 안 이드로는 모세에게 일일이 재판하며 개개인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가르치지 말고 백성과 그에게 유익한 조언을 해준다. 19

첫째, 지금까지 해 왔던 바른 신앙관을 유지 하라는 것이다. 방법이 바뀐다고 근본 원리가 바뀌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You must be the people's representative before God and bring their disputes to him."
너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19

기본적으로 하나님앞에서 판단하며 하나님의 기준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임을 분명히 한다.

둘째,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가르치도록 조언한다. 그래서 그들이 갈 길과 할 일을 알게 하는 것이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먼저 하나님의 자녀가 살 길과 방법에 대해서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Teach them the decrees and laws, and show them the way to live and the duties they are to perform.20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마지막으로, 능력있는 사람들을 세우라고 조언한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 21-22

백성을 다스리는 일은 이스라엘 민족의 흥망성쇠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가장 능력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했다.
capable men to judge 현대에도 판사들은 지적이며 매우 뛰어난 판단력과 학식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 능력있는 사람의 조건은 학식도 아니요, 논리적 판단력을 겸비한 지적 능력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men who fear God, trustworthy men who hate dishonest gain 21

이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잠1:7)의 말씀에 의해서 능력있는 사람의 조건을 분명히 하게 된다.
잠언 9:10절은 이를 또한 뒷받침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nd knowledge of the Holy One is understanding."

능력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지혜와 지식의 근본을 아는 자요, 명철을 가진자다.
이것은 우리가 능력있는 사람을 소원하는 교육을 생각할 때 꼭 명심해야하는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능력있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만 그것이 지식과 기술을 겸비한 뛰어난 학식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요, 지식이라는 것을 그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 교육의 목적은 우리의 자녀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되도록 돕는 것이다. 어떻게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될 수 있을 까?
성경의 인물들은 어떻게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되었나?
먼저 누가 여호와를 경외한 인물이었나?
그리고 그는 어떻게 그렇게 되었나?
부모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그들의 인격은 어떠했는가?
그들의 삶은 그렇지 않은 자들과 어떻게 달랐나?


Monday, August 5, 2013

자존심

박목사님 설교로부터 ,

고린도전서 92 / 십자가 / 고전 15:8-11 / 1993.06.23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자식을 위해서 믿는 부모들이 기도를 할 때 우리 자식을 엘리야 같게 하시고, 에스더 같게 하시고, 다니엘 같게 하시고, 이런 식의 기도를 너무 자주 하는 데 성경에서 그런 사람들은 결단코 그 개인의 총명이나 뛰어남을 그리기 위해서 그 사람들의 일생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연약한 사람들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과 은혜와 돌보심과 그로 부터 나오는 모든 진리와 생명을 증명하는데 우리가 쓰임받는 것을 복으로 따지고 있지 어느 인간이 어느 인간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하는 데는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십자가 앞에 섰을 때 맨 처음 처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자존심입니다. 어느 신자도 결국 자기의 신앙을 점검할 때 맨 처음 물어봐야 하는 건 자존심입니다. 내가 자존심을 얼마나 많이 처분했는가? 자존심이 처분되어 있지 않다면, 그래서 어떤 문제고 아직도 양보할 수 없고 그 문제에 관해서 아직 분통이 터지는 일이 있다면 그는 아직도 십자가 앞에 서는 일을 배우지 못한 것이 됩니다.

빌립보서 3:4
그러나

부활의 권능에 이르는 길은 그의 고난에 참여하지 않고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자가 가진 모든 신앙은 그 신자가 가진 어떤 특권과 능력도 그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해서 얻은 것이라면 그는 예수그리스도가 그를 대신해서 죽어야 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은 자가운데서 부활에 이릅니다. 산자로서 부활에 이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어 마땅한 자요, 죽은 자라고 평가해야될 자리로부터 우리의 신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누구의 앞에서도 자신이 낫다고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큰 특징중의 하나가 그래서 겸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떤 놀림을 받는다 할 지라도 우리는 더 이상 세상적 차원에서 평가하지 않고 하나님앞에서 우리를 평가해야 하고 세상이 어떻게 나를 대접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접하느냐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신자는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딤전 1:12-5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도바울은 자존심이 있었나? 자존감이 있었나? 그의 자존감은 자신의 능력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터 온 것이다.
못난이로서의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본이 된다. 자기를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명하는 삶으로 간다.
우리가 자존감을 가지고 나누려고 또 그것을 얻으려고 나누려한다면 결국 나를 드러내는 나눔이 되는 것 아닌가 ?
우리는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저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서 사용되는 것 자체로 만족하고 소리없이 나누는 것이 우리의 자존감, 인간다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나눔의 의미이다.

우리는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그 자랑으로 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우리됨을 잊고 또 교만의 자리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또 우리를 드러내는 나눔이 될 것이며 그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인간됨에 상처주는 길로 갈 것입니다.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를 들어내려고 합니다.
우리의 욕망은 늘 우리 자신을 드러 내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존감을 채우려 하고 드러내려고 하고 우리의 자존감을 다른 사람들의 것 보다 우월한 위치에 올려 놓으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자존감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자존감을 다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존감은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스스로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자존감을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을 때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타락으로 상처를 받고 우리의 욕심으로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빼앗김으로 말미암아 그 상처는 깊어지고 가고 있기에
우리는 그 상황에서 구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힘을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 구원을 베풀어 주시길 바라야 합니다.

Friday, August 2, 2013

고린도전서 090 /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 고전 15:1-8 / 1993.06.02

주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살아나셨다는 이 핵심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을 보는 눈과 하나님을 보는 눈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거룩한 것과 경건에 속한 것과 생명에 속하는 것과 은혜와 자비와 용서와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만 오며 인간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더 이상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아야 되고, 그래서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대하여 기대를 하지 말고, 세상에 대해서 그래서 절망하지 마십쇼. 그리고 세상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서 하나님께서 그가 하시는 거룩한 뜻을 이루시고야 말며 그의 은혜와 사랑을 절대로 유보하는 적이 없다는 것을 믿고 그 앞에 엎드려 우리 하나님앞에 구해야 하는 것들로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일을 쉬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나아가지 마시고, 하나님을 세상에 끌어 들이지 마십쇼. 여러분의 벼슬자리와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을 끌어 들이지 마십쇼. 여러분이 영적으로 구해야 할 모든 일들을 세상것으로 바꾸지 마십쇼. 이것이 핵심입니다. 신자들을 포함하여 현대인들의 최고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모두가 자기 욕심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박목사님 설교중에서-

Monday, July 22, 2013

요즘 한국인들의 고민과 대답이 여기에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스님이 자신의 철학으로 이 인생의 문제를 답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물을 사람도, 묻고 싶지도 않은 가 보다. 이 슬픈 현실이여,,

http://startasting.tistory.com/59

교회가 돈의 지배를 받다 (기독교학교는 어떤가? 똑같이 돈의 지배를 받는 현상이 나오지 않는가?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와 학교는 어디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교회가 돈의 지배를 받다

시사저널 | 정락인 기자·조혜지 인턴기자 | 입력 2013.07.23 10:06         
'교회를 크게 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어느 구절에도 없다. 예수는 평생 검소한 삶을 살았다. 물질적 힘과 권세, 종교적 카리스마를 주겠다는 유혹을 모두 물리쳤다. 예수가 거부한 것을 오늘의 일부 교회들은 앞다퉈 쫓아가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과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화근이 돼 교회가 경매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7월1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판교의 충성교회가 526억원에 경매로 나왔다. 종교시설로는 역대 최고가여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원래 충성교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서 개척교회로 출발해 규모를 키웠다. 2010년 판교 신도시가 조성되자 은행 돈을 빌려 교회를 신축했다. 지하 5층, 지상 7층 규모로 연면적 2만5980㎡(7859평)에 달하는 초대형 교회다. 예배당에서 3000명이 한꺼번에 예배를 볼 수 있을 정도다. 충성교회가 강남에서 판교로 옮긴 것은 신도시에 새로 유입되는 신도들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충성교회의 예측은 빗나갔다. 신도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고, 덩달아 들어오는 헌금도 적었다. 그렇다 보니 건축 부채의 원금은커녕 이자를 갚기에도 힘든 상황이 됐다. 교회측은 신도 확보를 위해 교회 부대시설 등을 지역민들의 문화센터로 개방하기도 했으나 생각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자금난에 허덕이다 교회가 경매되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다. 이 건물은 입찰자가 없어 한 차례 유찰됐고, 8월5일 20% 낮은 최저가 421여 억원으로 다시 입찰이 진행될 예정이다. 현행법상 종교시설은 다른 용도로 변경하기 힘들다. 종교 목적이 아닌 경우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매우 까다롭다.

그렇다 보니 고가 매물의 경우 입찰자가 나서기 쉽지 않다. 경매 전문 부동산업체인 태인경매 박종보 연구원은 "충성교회의 경우 너무 큰 매물이라 낙찰이 쉽지 않을 것이다. 4~5번 정도 유찰되고 절반 정도로 가격이 떨어지면 그때 낙찰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충성교회는 말을 아꼈다. 기자는 충성교회측에 교회가 경매된 사정을 자세히 듣고자 했으나 교회 관계자는 "따로 할 말이 없다"며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윤여풍 담임목사와의 전화 연결도 이뤄지지 않았다.





(왼쪽)종교시설 역대 최고가로 경매에 나온 판교 충성교회. (오른쪽)인천 송도의 한 상가건물에 입주한 교회. 매물로 나와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매물 쏟아지자 교회 매매 사이트도 등장

경매나 매매 시장에 나온 교회는 충성교회만이 아니었다. '교회 매매 전문 사이트'가 등장했을 정도로 많은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인 인천 송도의 성령교회는 지난해 10월 57억5000여 만원에 경매로 나와 팔렸다. 교회 관계자는 "채무 문제 때문에 교회를 내놓았고, 다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교회는 지난해 9월 58억원(융자 16억원 포함)에 매물로 나왔지만 아직까지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 경북 포항에 있는 한 교회도 올해 2월 13억원에 매물로 나왔지만 여전히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회측은 주변 환경에 대해 '5000세대 아파트 단지이며 근린공원 옆'이라고 했고, 특징으로는 '신항만 배후 단지이며 영일만 다리 건설 예정'이라고 적어놓았다. 신도들이 많아 헌금이 많이 들어온다는 뜻이고, 또 향후 개발이 되면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주변 환경도 좋고, 향후 유력한 개발 예정지인데 왜 교회를 팔려고 내놓은 것일까.

정 아무개 담임목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종교적 색깔이 맞지 않는 성도들이 빠져나가면서 자금난을 겪었다. 이자가 돌지 않아 스트레스로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정 목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긴다고 했다. 지난해 6월 내놓은 매물이 아직까지 팔리지 않는 것에 대해 "계속 운영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받들고 있다"고 했고,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팔겠느냐'고 묻자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양보해줄 생각이 있다"고 하는 등 잘돼도 하나님 뜻, 못돼도 하나님 뜻으로 돌렸다.

신축한 교회가 법원 경매로 넘겨지거나 매물 시장에 나온 곳도 있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교회는 12억2000만원, 경기 파주시 탄현면의 한 교회는 29억8000만원에 경매로 나왔다. 신축 교회를 팔려는 경기 일산 동구의 한 교회 관계자는 "교회를 짓자마자 3개월 만에 불이 났다. 지금은 수리한 상태에서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10억원대 이상의 교회 매물은 전국에 수두룩했다. 매물로 나온 교회들은 하나같이 은행 융자가 끼어 있는 것으로 보아 빚더미에 쌓인 교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인경매에 따르면 교회를 포함해 경매로 나온 종교시설은 2008년 181건에서 지난해에는 312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2011년까지만 해도 300건 이하였는데, 지난해부터 그 이상이 나오더니 올해는 6월 말 기준으로 벌써 150건이 넘었다.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20%가 증가한 수치다.

경매물은 교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종교시설의 경매가 부쩍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박종보 연구원은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 호황을 맞으면서 종교시설 증축 및 신축 바람이 불었다. 그러다 부동산 버블이 시작되면서 신자들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부동산 채무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교회 매매 사이트를 운영하는 김선우 권사는 "경험상으로 봤을 때 교회를 매각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신도들이 종교적인 색깔 등의 문제로 다른 교회로 갑자기 이동해서 자금난을 겪거나 교인들과 함께 교회를 형편에 맞게 옮기는 경우"라고 밝혔다.





2000년대 초부터 증축·신축 가속화

교회는 가족 공동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도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도 다니던 교회에 계속 나가는 특성을 보인다. 또 담임목사가 다른 곳으로 가면 그곳으로 교회를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교회가 다른 종교단체에 팔려도 신도가 그 교회에 계속 나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교회가 매각되자 일부 신도들은 한 신도가 가지고 있는 사업장에서 주말마다 모여 예배를 보는 경우도 있다. 결국 교회 매매는 신도들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주게 된다.

교회 운영 자금의 대부분은 신도들의 헌금에서 나온다. 헌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교회 재정이 어려울 때는 건축헌금 등 특별헌금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교회측은 매각을 하면서 신도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매각할 때가 돼서야 알려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경매나 매물로 내놓은 것을 숨기다가 거래가 성사된 후에 통보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신도들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은행, 신도 수·헌금 고려해 대출 규모 정해

교회가 경매되거나 매물로 나오는 것은 '경기 불황' 탓이 크다. 신도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지면 헌금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돈'이다. 교회는 신도 수만 일정하면 운영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여러 가지 명목의 헌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은행 빚이 많은 데는 무리한 확장에 원인이 있다. 신도를 늘려 헌금을 더 확보하기 위해 교회 규모를 키우려 하고, 은행 돈을 무리하게 끌어다 쓰다가 이를 갚지 못하면서 경매되거나 매매하는 것이다.

은행에서도 돈을 빌려줄 때 교회 규모나 신도 수 등을 고려한다. 한 시중 은행 지점의 간부는 "교회에서 대출 상담을 할 때 '우리 교회는 신도 수가 얼마이고, 헌금이 일주일에 얼마씩 들어온다'고 말한다. 우리도 신도 수와 헌금에 따라 대출 규모를 정한다. 은행 담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때 신도시에 큰 교회를 지으면 반드시 교인들이 찾아온다는 '신화'가 만들어지면서 신도시 대형 교회 신축 붐이 일기도 했다. 많은 교회가 양적 팽창을 추구하면서 대형 교회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도시에 대형 교회를 지으면 신도들이 몰려든다는 신화는 깨지고 있다. 사상 최고가 경매라는 '불명예'를 안은 충성교회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개신교에서 교회 규모와 신도 수를 교회의 위상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도 교회 대형화를 부추기는 원인이다.

개신교 신자이면서 < 예수 없는 예수 교회 > 를 펴낸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는 "예수님은 낮은 곳으로 직접 찾아다니면서, 씨알들과 동고동락했다. 한국 교회는 커질수록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오히려 거대화되면서 특권이 있는 곳으로 높이 올라가려고 한다. 그래서 '예수 없는 교회'"라고 비판하며 "교회는 돈이, 권력이 지배하는 공동체가 아니고 사랑이 지배하는 공동체다. 사랑보다 더 진보적인 힘은 없다. 스스로 낮추어서 남에게 좋은 것을 서로 주려고 하면 거기에 참 평화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Sunday, June 9, 2013

<외국인 150만명시대 다문화 2세의 현재와 미래>

'다문화가정 2세'에 포함되지 않는 제도권 밖 2세들 많아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지난해 5월 '다문화 가정 출신 방화범'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 모(18) 군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친권자인 할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정 군은 다문화대안학교인 지구촌학교 설립자 김해성 이사장에게 입양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곽경택 영화감독이 방화사건을 소재로 정 군이 출연하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실제로 김 이사장은 정 군이 두달 동안 병원에 격리돼 정신과 치료를 받고 넉달 동안의 교정프로그램을 이수하는 동안 정 군과 연락을 취하면서 그가 다시 인생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애썼다. 그러나 올봄 자유의 몸이 된 정 군은 얼마 전 집을 나가 연락이 끊겼다.

김 이사장은 "이미 아이가 아닌데다 세파에 많이 시달린 상태라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서 "정 군 사건은 한국의 다문화가정 2세 아이들이 가정과 사회로부터 방치될 경우 한국사회가 어떤 미래를 맞게 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정 군 사건을 시작으로 한동안 다문화가정 2세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정부는 이들만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이들의 사회적 이탈을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내놨다.

올해에도 '제2차 다문화가족정책 2013년도 시행계획'에 따라 다문화가정 자녀가 많이 다니는 학교에 한국어교육과정(KSL)이 운영되고 있고 다문화가족 자녀를 위한 이중언어강사도 늘리고 있다.

또 다문화가족 자녀가 취학 전에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는 예비학교도 지난해 26개교에서 올해 50개교로 늘어나고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해 지출되고 있는 기업들의 사회공헌사업비도 계속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인과 외국인으로 이뤄지는 일반적인 '다문화가정 2세'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혼을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다문화가정을 꾸린 외국인은 4월말 현재 14만9천386명이고 결혼한 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들을 합치면 22만여명에 이른다.

이들 외에 결혼 이외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결혼한 경우까지 합하면 결혼이민자는 26만7천명에 달한다. 또 외국인들 끼리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기도 한다.

이처럼 다문화가정 2세 통계에 누락된 이들은 정부의 다문화정책이나 각종 지원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으로 재혼이주한 부모를 따라 뒤늦게 들어오는 중도입국자녀도 해마다 늘고 있다.



피부색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
피부색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지난 5월13일 열린 '제32회 세종문화상 시상식'에서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이 축하공연을 펼쳤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도입국자녀는 지난해 4월 현재 4천288명으로 전년보다 2천명 가량 증가했으며 이들 중 정규학교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2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한국어를 전혀 못해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이현정(52) 단장(전 서울온드림다문화가족교육센터장)은 제도권 밖으로 이탈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지난해 4월 현재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가정 자녀 수는 4만6천954명으로 1년 전에 비해 21.4%, 2006년보다는 5배 늘어났지만 자퇴 등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교 이탈하는 비율이 일반 학생들에 비해 여전히 높다.

이 단장은 "학교 범위를 벗어난 아이들은 정부나 기업이 제공하는 다문화정책 및 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돼 사실상 방치되는 셈"이라며 "특수학교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과는 별도로 제도권 밖의 이주민 자녀를 위한 별도의 시설이나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 2세 교육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내국인 아이들의 다문화인식 전환 문제이다.

전문가들은 '리틀 싸이'로 잘 알려진 황 모 군이 베트남 엄마를 둔 다문화가정의 자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악성 댓글에 시달렸던 일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에 반(反)다문화 정서를 불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프리카 가나 엄마에게서 낳은 아이 셋을 돌보고 있는 지구촌학교 김 이사장은 "한국에서 태어난 순수 한국 아이들인데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아이들 중 하나는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지구촌 어린이마을'을 설립해 불법체류자 자녀를 포함한 다국적 아이들 50여 명을 수용했다"면서 "앞으로 3년 내 군에 입대할 다문화가정 2세가 4천 명에 이르는 등 앞으로 이들의 사회진출이 계속 늘어나는 만큼 어릴 적부터 피부색이 달라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2년 한국인과 결혼해 다문화가정을 이룬 독일 출신의 이 참 한국관광공사 사장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동사무소나 마을회관 등에 '다국어 놀이방'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시설을 만들면 한국 어린이와 이민자 2세가 함께 어울리면 말도 배우고 피부색에 의한 차별의식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올해부터 초·중학교 교과서에 다문화 관련 내용을 수록해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지만, 더 어릴 때부터 다양성을 몸으로 체득하게 만들어야 정 군이나 황 군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체류 외국인 150만 명 시대에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체류 외국인 150만명 첫 돌파..다문화·다인종화 가속

100명 중 3명꼴 외국인…중국(47%)·미국·베트남順 "다문화 부작용 최소화할 균형잡힌 정책 마련해야"연합뉴스 | 입력 2013.06.10 09:51 | 수정 2013.06.10 10:05



100명 중 3명꼴 외국인…중국(47%)·미국·베트남

"다문화 부작용 최소화할 균형잡힌 정책 마련해야"

(서울=연합뉴스) 현영복 기자 =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귀화자 등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150만 명을 처음 돌파했다. 국민 100명 가운데 3명꼴로 외국인인 셈이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미군, 관광객, 산업연수생 등 외국인은 38만여 명 수준에 불과해 우리 사회의 이방인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현재는 국제화 시대를 맞아 외국인이 국내 총인구의 3%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급증, 한국 사회는 외국인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진입했다.

체류 외국인 규모 확대로 외국인 혐오주의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다문화를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 녹아들게 할 통합적이고 균형잡힌 외국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10일 법무부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체류 외국인은 9일 현재 150만 1천761명을 기록, 150만 명을 처음 넘어섰다.

지난 2003년 체류 외국인이 67만 8천687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2배 넘게 급증했다.

국제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체류 외국인 수가 꾸준히 늘었고, 재외동포를 위한 방문취업제가 도입된 2007년에 체류 외국인 수가 106만 6천여 명을 기록하며 외국인 1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체류 외국인을 국적별(4월말 148만 6천367명일 당시 기준)로 보면 한국계를 포함한 중국(49.9%) 출신이 절반가량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이어 미국(9.3%), 베트남(8.1%), 일본·필리핀·타이(각각 약 3%), 우즈베키스탄(2.5%), 인도네시아(2.3%), 몽골(1.8%) 등이다.

이들 가운데 불법체류자는 17만 9천516명이다. 불법체류자는 2004∼2008년 20만 명을 웃돌았으나 2009년 이후에 17만 명 안팎 수준에 머물고 있다.

체류자의 연령별로는 20∼29세가 28%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30∼39세 25%, 40∼49세 19%, 50∼59세 15%, 60세 이상 9%, 9세 이하 4% 등이었다.

한국 국적 미취득 외국인 배우자(결혼이민자)는 14만 9천386명을 기록했다. 외국인 배우자 수는 지난 2009년 12만 5천87명 수준이었으나 2010년 14만 1천654명, 2011년 14만 4천681명, 2012년 14만 8천498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외국인 배우자 가운데 여성이 85.7%를 기록하며 대부분을 차지했다.

결혼이민자, 혼인 귀화자, 기타사유 국적 취득자 등 다문화가족은 작년 말 현재 26만 7천727명에 달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크게 늘면서 각종 외국인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다문화, 사회통합 등과 관련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내외국인 간, 인종 간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곽재석 이주동포정책연구소장은 "단일민족을 전통으로 삼아 온 한국 사회가 외국인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다문화 환경으로 진입했다"면서 "다문화에 대한 반감을 완화하고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결혼이민자, 조선족 동포, 이주노동자 등을 아우를 수 있는 균형잡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youngbok@yna.co.kr

Tuesday, May 7, 2013

재미있는 자기 존중감의 단어가 또 언급되고, 한국사회에 퍼져 있는 문제의 중심에 해결책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자기 존중감이다. 하지만 성경은 자기 존중에 대해서 얼마나 말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오히려 성경은 자기 존중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에 초점을 맞추어 살라고 한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존중이 지나쳐 자기 중심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자신의 욕망과 안위를 위해서 부정과 불의에 익숙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게 사는 인간이 자기 존중감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가정의 달에

2013-5-8

가정의 달, 5월을 맞으며 가정에 관한 책 한 권을 소개한다. "아름다운 가족"이란 제목으로 영어제목은 "The New Peoplemaking"이다. 가족학의 대가인 버지니아 사티어 교수가 쓴 책을 나경범씨가 번역하였고 도서출판 창조문화에서 출간하였다. "가정은 새사람을 만드는 공장이다"는 부제가 붙어있다.
과거에는 가정학을 많이 공부하였으나 시대흐름이 바뀌면서 가족학이 뜨는 학문이 되었다. 가정학이 음식, 주택, 의복 등의 가정문제를 주제로 다루는 학문임에 비하여 가족학은 가족들 사이의 인관관계를 중심으로 다룬다. 부부관계, 고부관계, 부모와 자식관계 등이 가족학이 다루는 중심과제이다.
"아름다운 가족"서두에 쓰기를 자동차는 자동차 공장에서 만들고 텔레비전은 텔레비전 공장에서 만든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디에서 만드는가? 가정에서 만든다. 가정이 사람을 만드는 공장이다. 자동차 공장에서 불량 자동차를 만들면 불량 자동차가 길거리를 달리고 텔레비전 공장에서 불량 텔레비전을 만들면 불량 텔레비전이 가정으로 배달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만드는 공장인 가정에서 불량 사람을 만들게 되면 그들이 불량 부모가 되고 불량 청소년이 된다.
물론 학교가 중요하지만 가정에서 불량 사람이 만들어지면 학교에서 감당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책의 서두에 쓰기를 모든 가정문제를 분석하여 보니 결론으로 4가지 문제로 요약된다고 하였다. 복잡한 가정 문제들이 결국은 이들 4가지 문제로 귀결된다는 지적이다. 그러기에 다음의 4가지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면 가정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문제를 극복하여 나갈 수 있게 된다.
첫째는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기 존중감이다.
둘째는 가족들 서로간의 의사소통이다.
셋째는 가족들 각자가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지를 규정하여 주는 규칙이다.
넷째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과 가족 밖 사회와의 관계이다.

Thursday, May 2, 2013

자녀행복이라는 단어를 찾아서 자신의 삶을 바꾸는 데, 자녀의 신앙을 위해서 삶을 바꾸는 크리스챤 부모들은 있는 가?

"우리 애들 대학 안 가도 상관없어요… 행복하면 되죠" 30·40代 8쌍, 小마을 만들어 시골 이주

충남 아산 송악면 '소나무 마을'조선일보 | 김연주 기자 | 입력 2013.05.03 03:14 | 수정 2013.05.03 09:55    


 
 
 
'우리 강빈이 델꼬(데리고) 계신 분~~.'(강빈이네)

'저희 집에 있어요.'(시예네)

'이런, 얼른 집으로 보내주~^^.'(강빈이네)

'강빈이가 밥 먹고 가고 싶대요. 찬은 없지만 그냥 여기서 먹일게요.'(시예네)

'아이고 ㅠㅠ 고마워.'(강빈이네)

충남 아산 시내에서 차로 30분쯤 떨어진 송악면 송학리 '소나무 마을'. 어스름 무렵이면 엄마 8명의 휴대전화 카카오톡에 '우리 애 어딨느냐'는 전체 메시지가 뜬다.

↑ [조선일보]충남 아산시 송악면 송학리‘소나무 마을’사람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얼굴이 까맣다. 어른들은 열심히 텃밭 일구고 꽃 가꾸고, 아이들은 양말이랑 바지 무릎에 수시로 구멍이 날 때까지 밖에서 뛰어논다. /신현종 기자
이 마을 아이들은 남의 집을 제 집 드나들듯 하며 놀고, 끼니 때면 아무 집이나 가서 "밥 주세요" 한다. 소나무 마을은 '좋은 교육'을 찾아 헤매던 30·40대 젊은 부부 8쌍이 마음에 드는 시골 초등학교 옆에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직접 일군 곳이다. 어른 19명, 배 속 태아부터 초등학교 5학년생까지 아이 17명이 함께 산다.

인터넷에서 만나다

소나무 마을 사람들은 2010년 인터넷에서 처음 만났다. 경찰, 삼성디스플레이 연구원, 홍보 대행사 이사, 건설 회사 직원 등 직업은 제각각이다. 유일한 공통점은 '아이들이 유년 시절엔 학원·성적 걱정 안 하고 행복하게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전원에서 아이 키우며 살고 싶은 마음에 부산, 남해, 제주도까지 알아보고 다녔어요. 혼자 집 짓고 살기는 좀 두렵고, 마을 만들어 살면 참 좋겠다 싶던 참이었어요."(박병구씨·47)

각자 이런 꿈을 이룰 방법을 찾다가 인터넷에서 만났다. 이들은 충남 아산시 송악면에 있는 거산 초등학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거산초는 '작은 시골학교'의 성공 모델로 꼽히는 곳이다. 농촌 학교라 2001년엔 학생 수가 30명까지 줄어 폐교 위기까지 몰렸는데 교사와 학부모들이 합심해 '생태 교육' '체험 학습'으로 교육과정을 바꾸면서 천안·아산에서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100여명까지 늘어 2005년에는 분교에서 본교로 승격됐다. 지금도 2015년까지 신입생 70~80명이 대기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안일배(37·삼성디스플레이 근무)·이정인(37)씨 부부는 주변에서 "미쳤다"는 말을 들으며 거산초를 택했다. "주변 사람들처럼 명문대에 목매면서 월 80만원 들여 아이를 영어 유치원 보내며 살기는 싫었어요."(이정인씨)

인터넷에서 서로 마음을 확인한 부부들은 실제로 만나서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겼다. 2010년 9월 거산초 근처에 땅 1600평(5290㎡)을 함께 사서 제비뽑기로 집 위치를 정하고 집을 지었다. 마을 근처에 소나무숲이 있어 '소나무 마을'로 이름 붙였다. 경찰관 신은재(38)씨, 홍보 대행사 이사인 정택순(40)씨, 그리고 금융투자회사를 다니는 박병구씨는 직장이 서울이라 아산에서 서울까지 매일 KTX 등으로 출퇴근한다.

소나무 마을은 날마다 캠핑

입주 3년차, 소나무 마을 사람들은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아 대만족"이라고 말한다. 우선 아이들이 즐겁다. 1학년 쌍둥이를 거산초에 보내는 정택순씨는 "말을 안 들을 때 '너 그럼 학교 안 보낸다'고 하면 말을 들을 정도로 애들이 학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봄이면 쑥떡 만들고 화전(花煎) 부쳐 먹는 '생태 체험 교육'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든 것이다.

어른들은 더 신났다. 소나무 마을은 하루걸러 '캠핑장'이다. 지난주에도 전체 카톡이 떴다. '오늘 저녁 6시 모임 은수네 집입니다. 맥주 2병씩, 집에 있는 과일 조금씩 가져와 나눠 먹을까요?^^.'

마을 사람들에게 "애들이 좋은 대학 못 가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안일배씨가 답했다. "대학 안 가고 농부 해도 괜찮아요. 행복하면 되죠." 박병구씨는 "지금 우리 애들같이 크는 게 소수이고, 어릴 때부터 학원을 도는 애가 다수다. 우리 애들이 귀하게 대접받고 필요해질 날이 올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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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February 12, 2013

Supporting Theological Reflection and Conversation that Strengthen the Ministry of the Church

BOOK REVIEW:
Educating for Life: Reflections on Christian Teaching and Learning. By Nicholas P. Wolterstorff, edited by Gloria Goris Stronks and Clarence W. Joldersma.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2. 304 pp. $21.99 (paperback). ISBN 080102479X.  In this well-written and accessible collection of essays and speeches, Nicholas Wolterstorff, addresses a number of topics related to Christian day schooling.  He outlines the purpose of the Christian day school and relates that purpose to curriculum concerns.  He answers a diverse number of critics of the Christian day school endeavor who believe that it is, variously, conformist, isolationist, or irrelevant in modern society.   He advocates altering the current system of school funding to make public funds available for private, religious schools.  Finally, he discusses the Christian life of gratitude, peace-making, and justice-seeking that the Christian day school should inculcate.
These diverse essays do not advance a single line of argument and are hard to summarize.  Yet, throughout, Wolterstorff draws upon the rich tradition of American Dutch Calvinism to construct a theological vision of education and its place in society.
From Wolterstroff’s perspective, education is an inescapable feature of human existence.  In contrast to bugs and rocks, humans are created to learn.  Being finite, they must choose what they learn.  We cannot learn it all.  When teachers make decisions regarding the curriculum, they not only select what their students will learn, but they decide the sorts of people their students will become.
Building on this foundation, Wolterstorff corrects a previous generation of Christian day school proponents who thought that the aim of Christian education was imparting a Christian worldview.  Such a goal, he contends, is far too modest.  He argues that a better goal is educating for the life of faithful discipleship in today’s world.  Faithful disciples, he says, live their whole life before God and seek Christ’s Lordship in every sphere of life. 
Wolterstorff concludes that education in the service of this purpose must address the whole person.  It must recognize that we are embodied creatures with intellect and affections.  It must be relevant to who students are today and who they will become tomorrow.  It must attend to the powerful unspoken messages that are imparted through the school’s ethos so that they are consistent with the life for which the school educates.  It must approach every field of knowledge in a way that teaches students that all life is lived before God.  Such an education must not isolate students in a Christian ghetto, but must expose them to non-Christian and anti-Christian voices of the broader culture.  Thus equipped, students can exercise the cultural mandate of Genesis 1 and develop a culture that is oriented to God and that sustains flourishing.
Wolterstorff draws on the Kuyperian understanding of spheres to articulate his view of the school’s authority.  Like many in this tradition he believes that since God has given children to parents, the basic right and responsibility for a child’s education inheres in the parents.  The realities of life, however, are such that parents cannot fulfill this obligation by themselves and must entrust their children to schools.  Teachers and schools derive their authority to teach from parents and maintain that authority based on their educational competence.  Although parents bestow educational authority on the school they choose, they retain the responsibility of seeing to it that their children are educated according to their religious beliefs and, if they are not, to seek an education elsewhere.
Wolterstorff  thinks that public education in common schools is a mistake.  He complains that education in common schools violates the conscience of those who, like him, think that all life is lived before God.  Furthermore, he observes that public schools cannot present a morally thick or compelling account of citizenship because they cannot refer to transcendent values.  To remedy to this situation Wolterstorff advocates a system of school choice.  Such a system would empower all parents, whatever their religious beliefs, to educate their children according to the dictates of their conscience. 
Reformed Christians have long been divided on the wisdom of common schooling.  When common schooling started, voices within the reformed tradition objected.  For example, the Southern Presbyterian theologian, Charles Dabney, denied that secular education was possible, claimed that public education encroached on the sphere of the family, and predicted that the dynamic of common schooling in a pluralistic society would make schools and society godless.  Dutch Calvinists in the mid-west viewed things similarly and formed their own schools.
In most other reformed communions, however, this position became the minority voice.  Education historian, Lawrence Cremin, reminds us that the advocates and leaders of the early common school movement in most states were largely drawn from the ranks of the Congregational and Presbyterian clergy.  Inspired by John Calvin and the Puritans, these leaders viewed public education as a common good.  They continued supporting public education as shed its religious content during the 19th Century and when it dropped prayer and bible reading in the 20th Century.  They stood by public education during integration and the gloomy days of massive resistance.  Through the years they maintained that public education was indispensable to a happy and holy society and trusted that a secular education would not hinder them in the task of forming disciples.
In recent years the minority position has received a new hearing.  In the 1980’s a nascent school choice movement began championing public funding for private and religious schools.  This movement has grown considerably and is challenging common schooling across America.  Voices in this movement range from libertarians, such as Myron Lieberman, to religious conservatives, such as Pat Robertson.  From this reviewer’s perspective, none is as articulate as Nicholas Wolterstorff.
There are many things to affirm in Wolterstorff’s thinking.  Surely he is correct to maintain that faithful disciples live all life before God and seek Christ’s Lordship in every sphere of life.  Surely he is correct to call our attention to the theological dimensions of all fields of knowledge.  The God we worship is, after all, the God of all things.  Finally, he is surely right to say that the purpose of the church’s educational program goes beyond inculcating a Christian worldview, but must aim to educate for the faithful life.
Having said this, this reviewer disagrees with Wolterstorff’s reading of the spheres as it pertains to education.  Wolterstorff, as we have seen, believes that God gives parents the primary right and responsibility to determine their child’s education.  In an ideal world, parents bequeath this responsibility to the school they choose, while retaining the right to choose another school or no school. 
God surely does entrust children to parents, but doesn’t God also entrust children to the world?  In no society, not even one, are parents the sole educators of their children.  Although parents do have a significant responsibility to oversee their children’s education, an obligation also rests on the larger whole community to ensure that every child is well educated.  Public schools fail when they do not provide some equality of opportunity and prepare everyone to participate in civil society.  A fuller understanding of education in relationship to the spheres will lead us to resist lodging educational responsibility entirely in any one sphere, whether it be the family or the public school.  It will also help us appreciate that God has given each sphere (the family, church, state, the media, etc.) a distinctive role to play in the stewardship of the education and nurture of children.
Wolterstorff is concerned that public schools teach children that God is irrelevant or limited to a sphere of life called “religion.”  Either result would, admittedly, distort the formation of a faithful disciple.  Yet, this need not be the case.  This is illustrated by a second criticism he levels at the public schools:  he says that public schools are unable to answer when their teaching about morals leads students to ask “why?” or “who says so?”  Isn’t it the case, though, that anytime the school has moved a student to “why?” the school has succeeded in conveying the profound importance of religion?  Wolterstorff complains that if schools can’t answer “why?” its moral education must be incoherent.  True, but a bit of incoherence at this point would only be a bad thing in a society without a church.  When a student asks, “Why?” the public school should tell students that the question is very important and worth pursuing, but they have no authority to answer (because the question is so important), and refer them to those with that authority: their family and religious institution.  This, of course, means that those of us in the church and the family need to be ready and equipped to answer.
Raymond R. Roberts
Pastor, Grace Presbyterian Church
Jenkintown, PA 

PUBLISHED IN THE BULLETIN OF THE INSTITUTE FOR REFORMED THEOLOGY, WINTER 2004, VOL.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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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January 2, 2013

홍정길 목사님 은퇴

 
▲ 홍정길 목사는 한국교회에 자기 성찰과 원칙의 회복을 강조했다.
한국 복음주의 1세대를 대표하는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가 2월 12일 은퇴를 한다. 복음주의 4인방(고 옥한흠·이동원·고 하용조·홍정길) 가운데 마지막으로 홍 목사가 은퇴하면서, 복음주의 1세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홍 목사는 지난 5일 일원동 밀알학교 이사장실을 찾아간 기자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자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으러 왔느냐며 뼈있는 인사를 건넸다. 최근 실효성이 다했다고 비판받는 87년형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핵심에 그가 있다.

1965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의 한 캠프에서 회심한 홍 목사는 남서울교회를 개척하여 크게 성장했지만, 1995년 밀알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에 돌연 퇴임을 결정하고 남서울은혜교회를 새로이 개척했다. 그는 대외적으로 유학생 선교 운동 단체 코스타와 캠퍼스 선교 단체 연합체인 학원복음화협의회 등의 활동을 통해 복음 전도에 앞장섰고, 장애인 밀알학교, 남북 나눔 운동 등 고통과 갈등의 현장을 목회의 사역지로 삼아 사회 선교에도 힘썼던 명실상부한 복음주의자다.
홍 목사는 37년간 목회하면서 경험한 가슴 절절한 사연, 87년 복음주의 체제에 관한 1세대 목회자로서의 생각, 통일 운동과 복지와 관련한 소신, 복음주의권 후배 목회자들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과 충고, 은퇴 후 계획까지 두 시간에 걸쳐 진심 어린 이야기를 쏟아냈다.
-37년간 목회 활동을 하면서 가장 의미 있게 관철했던 원칙은 무엇이었습니까.
밀알학교 설립 이야기로 풀어 보겠습니다. 설립을 1992년에 시작했는데 95년까지도 진척이 안 되더라고요. 어려움이 있을까 봐 땅을 살 때도 우리 교회 이름으로 사지 않고 밀알학교로 했어요. 그런데도 안 돼서 제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 때문에 포기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니, 하나님께서 '네가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소유보다 자유를 훨씬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소유는 내가 묶입니다. 자유가 제한되기 때문에 모으려 하지를 않습니다. '주님, 제가 소유하지 않으려 하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고 나니 제 퇴직금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때까지는 제가 퇴직한다는 걸 모르고 주님께 퇴직금을 바치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퇴직금은 제가 그만둘 때 받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금요일에 기도하고 나서 주일에 통보하고 바로 다음 주에 일어섰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새벽마다 이름을 불러서 기도했던 교인이 태반인데, 의논해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나와 버렸어요. 주인께서 가라고 하면 가야지. 남들 생각하는 것처럼 고뇌 속에서 한 게 아니라 그냥 가라고 해서 일어난 것뿐입니다. 순종은 그때 안 하면 안 되더라고요. 주님의 음성이라고 판단됐을 때, 그대로 빨리하면 쉽습니다. 지체하다 불순종하더라고요. 시간 끌다가 주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한 것이 더러 됩니다. 제 생애를 뒤집는 명령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목회는 경영과 다르다고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에게 목회 경영과 목회 활동은 어떻게 다릅니까.
한국교회는 미국의 영향으로 목회가 경영으로 변화됐어요. 긍정적인 면을 본다면, 목회의 다양한 측면을 표준화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목회 가운데 인격과 인격이 만나 서로 교제하고 사랑하면서 만들어 내는 신앙의 전수는 사라지지 않았나 싶어요.
예를 들자면 성경 전체에서 선지자나 위대한 지도자의 자녀는 부모의 영향을 못 받고 오히려 그 부모에 누가 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것과 반대로 족장들은 좌충우돌하는 과정은 있지만 결국은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해 줍니다. 인간으로서 욕심낼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을 하나님께 구할 수 있다면,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고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만 주신다면 아무것도 그 위에 덧붙이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족장들은 부모와 자식의 삶이 서로 맞대고 얽혀져서 삶을 전수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은 자녀와 삶의 접촉점이 없어요.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격의 전수는 인격으로 하는 것이지 교육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요즘 그게 안 되니까 전부 책 읽는 데로 도망갑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자기도 정리 안 된 서구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고 판단합니다. 예리한 비판력을 가졌으나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상실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신앙의 전수를 세습을 합리화하는 원리로 사용하지 않습니까.
세습은 자식에게 저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뿐 아니라 자식에게도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생애를 주셨습니다. 부모가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까지 전해 주는 것은 자식의 독특성을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부모로서 할 일은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주신 독특성을 아름답게 꽃피우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보다 큰 축복은 없습니다.
재벌도 세습을 하는데, 그런 가정마다 문제가 없는 곳을 못 봤습니다. 형제들이 사이좋은 집도 못 봤고요. 예수를 믿어도 똑같아요. 한평생 살다 가는데 자기가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다 놓고 가는 세상인데 말입니다. 많이 가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것 외에 기쁨과 만족은 없습니다. 고통을 나누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자기 성취를 자녀에게 다 안겨 주는 건 자녀에 대한 모독입니다.

  
▲ 홍 목사는 목회의 비전이 없는 사람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목회가 경영으로 변질되었듯이 큰 미국교회들의 아이디어와 프로그램을 그대로 이식하려는 문화가 교회에 여전히 있습니다. 비전을 제시하고, 성취하기 위해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습니다.

저는 목회의 비전이 없는 사람이에요. 비전은 CCC 졸업할 때 같이 졸업해 버렸습니다. 대부분 비전이라는 목표를 세워 놓고 사람 상하는 것을 불사하더라고요. 사람의 영혼이 상처입고 고통을 받는 것이 정말 비전일까요.
제가 75년부터 목회하면서 오늘까지,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습니다. 못나면 못난 대로 내게 붙여 줬으니까, 오히려 이 사람이 다른 데 가서 해를 끼칠까 싶어 제가 품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저기 가서도 문제더라고요. 저는 그 사람을 알고 당할 만큼 당했기 때문에 대처 방법을 압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또 그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요.
남서울교회에 있을 때 한 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제가 나가고 나니까, 효율이 안 된다고 그분을 내보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분을 데려와서 지금까지 같이 있다가, 은퇴할 때 내 후임에게 짐 안 지워 주려고 같이 은퇴했습니다.
-교인이 2000명이 넘어가니 한 사람 한 사람 기억하며 기도가 안 되더라고 고백한 적 있는데, 그때는 어떻게 목회를 하셨는지요.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성도들이 나와 같은 목표를 보도록 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만 '남북 나눔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남북 나눔 운동을 하는 목표를 교인들도 알도록 제시했어요. 코스타를 하면서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 '호수가 아무리 흐리더라도 물 근원이 맑으면 호수는 반드시 맑아진다.' 이런 마음으로 코스타를 했고 학복협을 만들었어요. 교인들에게도 내가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와 목표를 보여 주었죠. 그때 김인수 교수를 비롯한 많은 교인이 저와 함께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교육 방향입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성도들의 성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만을 두고 말하지 않습니다. 행하는 일도 온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되고, 행실도 온전해야 해요. 온전함을 추구하면서도 행한 일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실제로 많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해요. 하지만 좋은 생각을 하고 나쁜 행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른 생각을 하는 것과 바른 행동으로 가는 것은 또 달라요. 그런데 이것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많은 시간이 투여되어서만 됩니다.
(홍정길 목사는 남서울은혜교회를 목회하면서 온전한 행함을 위한 훈련 과정으로 다양한 생활 훈련 학교를 만들었다. 결혼예비학교, 신혼커플학교, 부부태교학교, 애착부모학교, 새세대엄마학교, 사춘기자녀부모학교, 크리스천부모학교, 청년기부모학교, 어머니학교, 부부학교, 평신도후반기사역훈련, 새롬평생대학…. 홍 목사는 학교들 하나하나를 세세히 설명했다. 기자가 '감히'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신명 나게 설명했다. 교인들에게도 이러한 기운으로 함께 공부하자, 같은 목표를 가지고 운동하자고 했겠구나 싶었다.)
-37년간 목회하시며 많은 성과를 거두셨듯이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혼을 앞둔 큰아들에게 "네가 나와 있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뭐냐"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어렸을 때 아빠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며 우는데,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새벽에 나갈 때 아이를 봤고 밤늦게 들어와서 아이 머리맡에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얼굴을 봤죠. 근데 그 아이가 나를 못 봤다는 것을 아들이 결혼할 때서야 처음 알았어요. 울면서 아이에게 사과했습니다.
(아들 이야기를 하는 홍 목사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족장들처럼 신앙의 전수가 목회의 최고 가치라 말했지만, 자신은 정작 자녀들에게 선지자처럼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회한이 담겨 있었다. 아울러 그럼에도 건강하게 자라 준 자녀에 대한 고마움이 묻어났다.)
은퇴하면 무조건 손주에게 가서 있어야겠다, 아들에게 못 한 걸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근데 손주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아빠이지 제가 아니었습니다. 이건 만회할 수 없는 일이구나, 이 고통은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안고 갈 것이지 해결될 일은 아닐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교인들에게도 아쉽지요. 제가 활동하는 코스타가 지금 세계 30곳에서 합니다. 많은 시간 국외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독립군 자식 같아요. 아빠가 나쁜 일을 하면 불평이라도 하겠는데, 밖에서 들리는 소식은 "너희 아빠 좋은 일 한다"고 다들 칭찬을 하니 말을 못 했습니다. 우리 교인들에게 저는 찾을 때 없는 아빠입니다. 성도들에게 그건 회한으로 남습니다.

  
▲ 홍 목사는 교회가 목회의 원칙을 자기 안에 확립하지 않으면, 급류 속에서 일을 놓치고 힘을 잃어버린다고 했다.
-목사님께서는 최근 분쟁을 겪고 있는 분당중앙교회 문제에 참여하여 화해의 설교를 하고, 중재를 위해 결정적 역할을 하셨습니다. 개 교회 문제에 중재를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어떻게 문제를 풀어 가셨나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최종천 목사와 교회사랑 측에서 거의 동시에 중재를 요청해 왔습니다. 저는 양쪽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공통점을 만들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이쪽에서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저쪽에서 양보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양쪽 모두 양보할 수 없는 것.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일을 풀어 갔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자기주장만 하다가 주님이 원하는 일을 놓쳐 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서 정말 무엇을 원하시나' 같이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따로 많이 만났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그분들이 하는 얘기를 다 들었어요. 감사한 것은 양쪽에서 저를 동일하게 신뢰해서 어느 정도 중재가 된 것 같습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무너지는 교회를 보면서도 나서지 못해 아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무너져 가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 것을 준비하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결국은 원칙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주께서 주신 목회의 원칙을 자기 안에 확립하지 않으면, 급류 속에서 일을 놓치고 힘을 잃어버리죠. 내가 목회할 공간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이 격랑에 그냥 쓸려 가는 것 같습니다. 정말 피나는 자아 성찰과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한 부단한 결단이 시시각각 필요합니다. 자기 삶의 원리가 없으면 부평초처럼 떠내려갑니다. 말씀에 깊이 뿌리를 두고 서 있어야 합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받기 전날 새벽, 평신도로 평생 목회자를 섬긴 아버지께서는 저를 찾아와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어요. 하나는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말하라는 거고, 다른 하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라는 거였습니다. 당신이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목사들은 잘못했다는 말을 못 하더라는 겁니다. 마치 잘못이 없는 것처럼 사는데 너는 제발 그렇게 살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대접을 받는 게 익숙해져서 '감사하다'는 말을 못 하던데, 늘 감사하는 목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님 말씀에 제가 한마디를 덧붙이겠습니다. 목사들이 예수를 잘 믿어야 합니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요즘 신앙은 '예수 믿으면 천당을 간다'는 이런 단순하고 원시적인 믿음 때문에 문제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것밖에 못 믿는다고 그랬어요. 제가 볼 때 목사들이 천국을 갈 생각을 안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어떻게 천국이 있는데 그렇게 살 수 있어요. 목사들이 예수도 안 믿고 천국도 안 믿는 시대입니다. 천국에 대한 믿음을 놓치면 안 됩니다. 그래야 실수를 해도 주님께서 다시 회복할 힘을 주십니다. -뉴스엔죠이 중에서